좋은 시 102

먼 곳에서

먼 곳에서 / 조병화 이젠 먼 곳들이 그리워 집니다 먼 곳에 있는 것들이 그리워 집니다 하늘 먼 별들이 정답듯이 먼 지구 끝에 매달려 있는 섬들이 정답듯이 먼 강가에 있는 당신이 아무런 까닭없이 그리워집니다 철새들이 날아드는 그곳 그곳 강가에서 소리 없이 살아가는 당신이 그리운 것 없이 그리워 집니다 먼먼 곳이 날로 그리워집니다 먼 하늘을 도는 별처럼

좋은 시 2011.03.02

알 수 없어요

알 수 없어요 / 한용운 바람도 없는 空中에 垂直의 波紋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塔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香氣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根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흐르는 적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바다를 밟고, 玉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날을 곱게 丹粧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좋은 시 2011.02.08

모래 발자국

모래 발자국 / 정해각 바닷가 모래사장위에 남겨진 발자국 아물지 않는 애증의 상흔들이 마음속 깊이 겹쳐서 쌓여 오고 메마른 영혼은 갈등 만 깊어 간다 저 깊은 바닷속 신음 소리 그 중압감이 나를 짓 누르고 파도가 밀려 왔다 가면 지난 흔적들을 모두 지우고 넓은 물 자취만 남긴다 바닷가 모래사장 위에 남겨진 발자국 가다가 겹쳐진 자국마다 사연 남기고 뜨거운 태양 아래 달아 오른 정염의 불길 밀랍 같은 나신을 녹여 하나로 형상화 한다 저 푸른 바다도 깊은 신음 토해 내 내 마음에 움트는 에로티즘 불 당기고 큐핏의 화살은 凹의 과녁을 꿰 뚫는다 저 멀리 수평선에서 넘실대면 밀려 오는 파도는 산산이 부서져 흰 포말을 뿌린다

좋은 시 2011.02.06

흔들거리는 허무

흔들거리는 허무 / 박재삼 세상에는 온통 흔들거리는 것뿐인가 가까운 풀잎 나뭇잎이 그렇고 저기 물빛 반짝이는 것이 그렇고 멀리는 산맥들이 우쭐거리며 다가오다가 주저앉다가 하는 것이 영락없이 그 짓의 되풀이다 사랑하는 시람아 그대와 나의 가장 아름다운 몸짓도 결국 이 범주에 드는 것만 이제 확인하고 나면 어쩐지 그것이 왕창 허무하다는 생각이다

좋은 시 2011.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