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락 69

생각대로

이 세상 어디에도 미련이 없었는지 참으로 무정하게 가버리더구먼 날씨 (日氏) 말이야, 반갑다 싶더니 어느 날 인사도 없이 영하의 세계로 몸체를 감추었어 그것도 야간 도주해버렸나 봐, 본 사람이 없대. 새벽엔 창문을 노크하는 자가 있어서 그 앤 줄 알았지, 일어나 보니 아니야 세월(歲月)이가 임인년(壬寅年) 이를 데리고 왔어, 흑 호랑이니, 잘 키우라고 하더구먼. 덥석 받아 놓았지, 참 귀엽다 했지. 저런 저런 내가 뭘 알아야지 (지구 밖을 나가보지 못했으니까)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목숨을 내놓아야 할지도 모른다는데(영생하는 분에게는 죄송) 아니 한 년(年)이란 자기 생명을 그만큼 갉아먹는 거라는구먼, 그래 세상이 뭐 자기 의지대로만 되는 게 없기는 하거든. 그런데 액운은 요년이 막아줄 것 같아, 잘해보..

뜨락 2021.11.29

넋이 나간 집과 넋 빠진 사람

봄기운을 타고 나간 곳이 남한산성 계곡. 이제 산속의 초목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났는지 회색 외투를 벗으려고 눈을 비비고 있다. 행정상으론 하남시에 속한 어느 초가 맛집을 찾았다. 뭐 SBS에서 다녀갔다고? 울타리도, 간판도, 문패도 없는 계곡 끝자락 좁은 시골길에서 넋이 나간 초가집 하나 찾았다, 그런데 이 초가집은 겉은 말할 것도 없고 심장까지 속이 썩어 너덜너덜 내려앉아 흉가에 다름 아니고 혼자서는 접근도 못할 것 같이 으스스하다. 이 곳이 음식점 이라니 말문이 막힌다. 어럽쇼. 마당에 차가 들어갈 수가 없네. 만원사례. 미안하오나 저 아래 가서 주차하고 오라 한다. 가만 보니 외제차도 많이 와 있다. 아 식사하는 곳이 다른 곳으로 안내되어 있네. 그럼 이 초가집은 전시용인가? 얼마 전까지 영업을 이 ..

뜨락 2021.03.15

촌음(寸陰)의 존재

할 일 없어서가 아니고 시간이 없어서 못했다. 하고많은 날 무슨 시간 타령인가 하겠지만 초침(秒針)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심장 박동이 뛰고 있는 것과 같다. 이 초침이 나의 삶의 소요(所要)를 확인시켜주고 나라는 생명체의 존재감(存在感)을 인식시켜준다. 나는 이렇게 주어진 촌음의 공간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흘러 새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가장 절실하다. 하루 해는 정말 짧다. 마음먹은 하루일이 무엇에 방해를 받게 되면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초조하다. 그렇게 하다 보면 일주일이 번개처럼 가버린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면 헛바퀴 돌린 컷처럼 허전한 마음으로 뒤돌아 보며 달력을 찢는다. 일 년이 다 간 세밑에는 "사는 게 별거드냐" 하고 푸념으로 문을 닫는다. 못다 한 미련들은 구겨서..

뜨락 2020.12.29

낡지 않는 바퀴

人生無常(인생무상) 용케도 잘 굴러가는 것이 있으니 흐림도 맑음도 삭풍도 비바람도 가리지 않고 어김없이 오가는 계절. 해를 거듭하다 보면 일러 세월이라 한다. 엿가락처럼 느려서 보면 시대라 한다. 하늘이 두 쪼각나고 집 천정이 무너져도 이 수레바퀴는 개의치 않고 흘러간다. 세월이 흘러 한 시대가 가기까지 몇개의 계절이 오갈까. 그것도 맑은 정신으로 똑바로 느끼는 계절이. 오랜 장마의 수해를 견더내고 피었어요 수 많은 잎이 동시 다발로 피어 군무를 펼치네요 샛노란 잎이 연록과 어울려 온화한 마음의 평화를 줍니다 수많은 가지에 무수한 잎을 애지 중지 키워 생산하고 어떻게 이별을 할까요 이렇게 화려한 색상으로 나목을 준비하고 있는데 색이 너무 고와서 고마울 따름입니다 언덕에 심은 벚나무가 언덕 아래로 축 늘어..

뜨락 2020.10.28

기을로 가는 문턱

만산이 홍엽으로 물들 날도 머지않은 터 요즘 날씨 참 좋은데 좋은 줄 모르고 살았다 1월부터 시작한 코로나 19 바이러스 전염병으로 전 세계 사람의 왕래를 단절시키고 모든 사람의 활동을 막고 있는 위축 속에 오랜 궂은 장마에 흐린 날씨의 연속은 더욱 기분을 짜증 나고 우울하게 만들었다. 늦은 태풍의 연속이 더욱 불안을 가중했고 각급 학교갸 개교하지 못하고 종교활동, 판촉활동, 스포츠 행사, 문화행사, 모든 집회 행사를 금지하고, 국제 간에 교류가 중단됨으로써 세계적인 질서도 재편돼가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세계적인 기후 변화로 각 나라마다 자연재양이 잇달아 발생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음은 우연이 아니다. 이러다가 우리는 요 며칠 깨끗한 날씨를 맞았다. 그런데 이 햇빛 안에 독한 바람기가 있음을 감지한..

뜨락 2020.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