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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平和祈念公園, Peace Memorial Park)

서로도아 2022. 12. 19.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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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제2차 대전의 피비린내 나는 격전지였고, 또한 빼어난 자연경관을 가진 태평양상의 국립공원이다. 1972년 5월 15일 설립하였으며 면적은 31.27 평방 킬로미터로 60여 만평에 달한다

아세아 태평앙 전쟁에서 지상 최대의 격전지였던 오키나와 전투 현장이다.

평화위령탑, 한국인 평화 위령비, 평화기념 자료관, 평화의 초석, 비석 등이 있다.

전쟁으로 희생된  군인과 민간인 모든 사람들을 추모하는 공간이다. 타국에서 운명하신 우리 한국인의 넋을 기려 본다. 

 

 

하얀 탑은 오키나와 Peace Hall. 평화기념 탑) ,1978년 개관.

 

 

공원이 잘 정돈되어 있고  소나무들이 잘 자라고 있다.

 

태평양이 내려다 보이는 아름다운 한 언덕에 오키나와 전쟁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이름이 까만 비석에 새겨져 지그재그 형태로 놓여 있다. 그 수가 24만 856명 ( 외국인 14,526명 .한국인 326명 포함)

 

오키나와 수비 제32군단 우시지마 사령관의 자결과  함께 종말을 맞이했던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현장이다.

 

전쟁 당시 오키나와를 포위한 1,500여 척의 미군 함정과 그로부터 날아드는 엄청난 함포사격을 나타내는 "철의 폭풍"을

이미지 화한 지그재그 형태로 된 희생자들의 각명비를 (평화의 비)가 조성되었다.

 

 

 

오키나와는 1429년 최초로 류큐 통일하여 류큐(琉球) 왕국을 세우고 (수도: 首里(슈리)) 독자적인 문화 역사를 가지고 있었으나 , 1609년 사쓰마 번의 침공 아마미 군도의 지배권을 내주고, 에도 막부의 아마미 군도 점령으로 1872년 일본제국이 속령으로 선언한다. 1879년 일본 제국에 강제 병합되어 자주성 상실하고 멸망한다. 1921년 일본의 오키나와 현으로 된다,

일본이 오키나와 전투에서 패전 후 일본 국가의 요청으로 미군은 류큐를 일본에서 떼어 미국이 점령 통치하는 국가로 만들었는데  도카라 열도와 아마미 군도를 1950년도에 차례로 일본에 반환했다. 그래서 미국이 세운  류큐 정부의 범위는 오키나와 현으로 축소되었고, 1972년에 오키나와 현도 일본에 반환했다. 그 후 전쟁과 평화를 둘러싼 기록 투쟁에 지금까지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펑화의 초석

 

 

평화 자료 기념관

지하 2층 지상 3층의 단일 건물. 73년 10월 착공, 75년 6월 완공 

하나의 건물이나 여러 형태의 지붕을 얹혀 마치 촌락을 이룬 듯하다. 지금 보수 중에 있음

오키나와  

지금도 전체면적의 20%가 미군기지이다. 유사시 동 아시아 발진기지로 위치하고 있는 가운데 항상 전쟁의 불안을 가슴에 안고 있는 주민들은 군국주의 부활에 대하여 강한 우려를 나타냄과 동시에 역사의 올바른 기억을 통해 평화를 이루기 위한 투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지역의 지질(암석)을 보존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