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9 12:55 인천공항을 이륙한 비행기가 2시간 만에 오키나와 나하(那覇) 공항에 착륙했다. 오키나와는 음침한 날씨에 비가 내리고 있어 바다에 설치된 활주로와 공항이 젖어있어 분위기를 어둡게 하고 있다. 검역 방역을 선두로 5번 이상의 입국절차와 심사를 철저히 하고 나와 화물을 찾았다.
모노레일을 타고 공항 역을 출발 숙소 근처인 오모로마치 역에 짐을 보관하고, 다시 모노레일을 타고 슈리 역에 내려 슈리성 공원을 향해 관광을 시작했다.
인천공항 이륙
오키나와 나하 공항 착륙
방역망이 철저한 공항의 여러 관문을 거쳐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하 공항역 모노레일 출입구에 도착했다.
15번 슈리 역에 하차
우중에 비옷을 입고 약 10분 걸어서 슈리성(首里城)에 도착 입성하였다.
그러나 대충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보고 홍보관에 들려 비 그치기를 기다렸으나 그치질 않고 날은 어두워 되돌아 나왔다.
원래 류큐왕국(琉球王國)의 왕궁이었다는 점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점으로 보아 역사성이 깊은 곳이란 점으로 이해하겠으나 제대로 관찰하지 못해 아쉬웠다. 좋은 날 다시 와야겠다고 다짐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수리성에 도착하여 궁문 성벽 안으로 올라갔다.
2019년 10월 31 화재로 불타버린 왕궁 정전(正殿)은 복원 중 이기에 가 건물만 보인다.
우중에 창문으로 보니 제작 중인 용신의 일부만이 보인다
봉신 문: 어정에 연결 되는 마지막 문. 3개의 문 중 중앙의 문은 국왕이나 신분이 높은 사람만 통과하는 문이었다고 한다.
제작 중인 지붕위의 용신
홍보실에서 비를 피하여 영상물로 왕궁의 역사를 대충 읽었다
슈리성(首里城)의 슬픈 역사
일본 오키나와 현 나하시에 있는 류큐(瑠球) 왕국의 왕궁이자 정전(正殿)이다.
슈리(首里)는 나하(那覇)와 별개지역으로서 류큐(琉球) 왕족의 수도였는데 지금은 나하시의 일부로 합병되었다.
류큐 제도는 약 140개의 섬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들 중 사람이 사는 섬은 30개 정도이다. 가장 큰 오키나와 섬은 제주도의 2/3 크기이며 기후는 아열대성으로 가장 추운 1월의 기온이 평균 17도 정도이고 가장 더운 8월은 약 30도 정도이다. 장마철인 6월에 강우량이 집중된다. 태풍은 년 평균 7~8회 정도 7~9월에 오는데 주로 9월에 많다.
175m 높이의 언덕에 있는 수리성은 처음 13세기경 지어졌다 하나 정확지 않다. 1453년 불타 없어진 것을 재건하여 왕궁으로 사용하였으나 1609년 일본 사츠마 번(薩摩 藩 살마 번)에 정복되어 속국이 되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 오키나와 전투 당시 일본 육군 제32군의 사령부로 개조되어 방어를 담당하였다.
1945년 5월 25일~27일 3일간의 치열한 전투에서 미국의 뉴멕시코 급 전함의 주포를 얻어맞고 건물은 완파되고 수많은 문화재가 손실되는 피해를 입었다. 전쟁에 패하여 1945년 5월 27일 제32군 사령부가 퇴각을 결정하자 부상자 5000명이 지하벙커에서 집단 자결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전쟁 후 수리성은 1992년부터 차례로 복원을 시작하여 2019년 1월, 27년 만에 복원을 완료하였다. 그러나 2019년 10월 31일 2시 40분 불과 10개월도 안돼 대형 화재가 발생 주요 건물이 전소되고 말았다.
화재 현장을 2020년 6월 12일부터 일반에게 공개하기 시작했으며 2020년 11월 3일 다시 복구작업을 시작하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나 현재의 상태로는 요원해 보인다.
2000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나 건물이 모두 소실되어 다만 지역(땅)만이 남아 있지 않나 싶다.
오키나와는 19세기 말엽에 일본에 편입되면서 일본땅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일본 땅이라고 해도 식민지 취급을 받을 때도 종종 있었고 전쟁 시 주민이 강제 징집 되어 희생된 자가 부지기수이며 가족들끼리도 서로 살육하는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
이로서 일본의 속국이 된 류큐제국은 핍박과 희생을 강요당하며 입은 인명피해가 엄청나므로 감정이 좋을 리가 없고 지금도 미군이 주둔하여 묘한 감정을 다독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守禮門(수예문)
수리성 정문으로 수예지방(守禮之邦)이란 예를 지키는 나라란 뜻이다.
12월 13일 재차 방문한 슈리성 참관기를 더 붙이고자 한다.
12월 13일 다시 찾아간 슈리성. 수학 나온 학생들로 아침부터 붐볐다. 비가 와서 제대로 보지 못한 곳을 좀 더 자세히 보고 화재로 소실된 세계적인 문화재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내궁궐로 입궐을 허가하기에 입장 티켓을 끊어 학생들과 함께 들어갔다.
불타 그을린 흔적은 다 지워졌고 궁궐터는 가 건물을 지어 안에서 건축자재만 쌓아 놓고 있어 유물은 실체가 없고, 대충 옥외 후원과 전망대에 올라 사방의 나하시내를 한눈에 바라보고 내려왔을 뿐이다.
내궐에 있던 중요 건물은 불타버린 모습만을 사진으로 보여주고 있고, 볼 수 있는 실물은 타다 남은 기왓장 몇 장이 전부였다. 단지 내궐의 형태와 성곽의 윤곽만 파악 될뿐 빈터를 입장료 내고 들어가기란 아까웠다.
즈이센 문
로고쿠 문
화재로 소실된 왕궁터와 그 후원 그리고 전망탑에 오르는 지역은 유료화하고 있어서 티캣을 끊고 입장하였다.
북편으로 올라온 길과 통행문이 한눈에 보인다.
고후쿠 문
옥상에 올라 본 나하시내
영상관
불타버린 시사와 잔해. 결국 전란과 2차에 걸친 화재로 유물은 전연 이곳에서 볼 수 없고 단순히 성벽만 남은 셈이다.
잔존하는 붉은 기왓장
기모노에 발가락 게다를 신고 있는 고궁 안내원. 신발을 보고 손을 가리키니 피식 웃는다.
목공작업 사진 물
공원 내 전망탑에서
불타버린 슈리성 정전. 세계문화유산 건물
첫날 수리성에서 비를 맞고 나와 거닌 슈리역 근처의 예약된 호텔에 여장을 풀고 옷을 갈아입은 후 저녁식사 겸 국제거리를 관광하기 위하여 택시를 불렀다
오키나와의 가장 번화가인 나하 국제거리(고쿠사이 도리)
각종 맛집과 잡화점, 볼거리들이 많다는 국제거리에 택시를 잡아타고 갔다
무한 리필 샤부샤부 집에서 닭살과 돼지고기로 맛을 내고 만찬을 즐겼다. 비도 그치고 길게 뻗은 국제거리를 걸으며 눈요기를 하였으나 우리네가 긴요하고 필요한 물건이 눈에 들어오지를 않는다. 왠지 시장통인 거리가 한산하고 사람도 북적이지 않아 국제거리란 명칭이 어색하고 아까워 보인다. 일본의 과자류를 입에 넣어 보나 너무 달아 식성에 맞지 않는다.
이 집에서 만찬
샤부샤부 요리 맛있어 몇 판 추가했다.
12월 13일 다시 찾아간 슈리성. 수학 나온 학생들로 아침부터 붐볐다. 비가 와서 제대로 보지 못한 곳을 좀 더 보고 화재로 소실된 세계적인 문화재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입궐을 허가하기에 입장 티켓을 끊어 학생들과 함께 들어갔다.
불타 그을린 흔적은 다 지워졌고 궁궐터는 가 건물을 지어 안에서 건축자재만 쌓아 놓고 있어 아무 실체가 없고, 대충 옥외 후원과 전망대에 올라 사방의 나하시내를 한눈에 바라보고 내려왔을 뿐이다. 화재 당시의 중요 건물의 이 불타버린 모습만을 사진으로 보여주고, 볼 수 있는 것은 타다 남은 기왓장 몇 장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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