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모통이

돌 같은 사람의 생각

서로도아 2021. 4. 6. 21:20
728x90

춘삼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했던가,  안개 자욱한 서해안의 밤공기 아직은 차다.

 

인간 백세의 시대라 하니 그래도 좀 더 살아볼 만한 세상인데, 코로나 19가 발목을 잡고 오도 가도 못하게 하고 있으니

어디 살맛이 나야지. 늙은이가 목숨을 내 걸고 숨통이라도 크게 쉬어 볼 요량으로 출문(出門)한 곳이 서해안 태안반도 일대이다.

안면도의 아일랜드 리솜에 여장을 풀고 북쪽 천리포수목원을 첫발로 해안 도로를 따라 넓고 푸른 수평선을 바라보며 남쪽 끝 원산도까지 발걸음을 옮겨 봤다.

 

천리포 수목원은 사계절 꽃과 세계의 수많은 수목이 집결되어 있어서 내가 자주 들리던 곳인데 아직 이르나 그래도 새싹의 돋음을 보기 위해 들렸다. 아름다운 해안의 경치와 더불어 서해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어서 시원스레 산책하기에도 좋다.

 

 

날씨는 흐리고 황사와 안개가 겹쳐 시야가 좋지 않았으나, 해풍도 한낮의 따뜻한 봄바람 앞에서는 맥을 못 추고 시원함을 온몸으로 채움 하며 지나가고 만다,

간조 때 조류의 변화와 함께 드러나는 서해바다의 시원한 벌판과 만조 때의 채움의 변화가 시간에 따라 무상함이 교차하는 자연현상을 보고 철석대는 파도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끊임없는 변화와 무상(無常)의 존재는 우리 인간계 만물의 삶을 재촉하는 거친 숨결소리 같기도 하다.

 

 

마침 보름 때라서 간조가 쓸어가는 민물의 수평선은 끝 간 데 없이 아스라하다. 물 빠진 드넓은 백사장의 간결함이 세상 풍진 다 씻어준 듯 허허롭고, 대 자연의 품속은 이렇듯 평화롭고 안락하기만 하다.

 

 

 

 

활짝 펼쳐진 하늘과 땅, 이에 맞닿은 수평, 막힌데 한곳 없이 한 없이 넓고 푸른 해상 공간,  저것이 다 내 것인데 무얼 더 바라고 바둥거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나, 돌 같은 사람.

돌 같은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여기는 태안군 남면 청포대 해안. 넓은 백사장에 낮은 수심으로 여름 피서철 수영하기 좋은 해수욕장이다.

 

 

멀리 비상하는 갈매기들의 군무를 보러 쫓아가다가 문득 큰 바위섬 앞에서 멈칫했다.

 

 

바로 저기. 뭐가 있어, 저것이 뭐지?

 

 

 

가까이 가 보니 눈을 의심하여야 하나, 고개가 갸우뚱 해 진다.

이것은 뭘까? 타원형으로 된 대형 황색 바위덩이를 누가 왜 저 높은 바위 위에 올려놓았을까?

자연경관을 해치고 볼 성도 사나운데, 누가 일부러 가져와 어떤 목적이 있어 올려놓은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그리고 이 바위섬 반대편 바다쪽으로 내려가 보니, 아 이건 또 뭐야. 

석물로 조각한 토끼와 자라상을 가져와 이 선 바위틈에 끼워 놨네. 이런 억지.

어떤 무속인이 신앙의 상징물로 설치한 것 같기도 하고,  동화속의 만화경 같기도 하고,  여하튼 생화(生花) 속에  조화(造花)를 끼워 놓았으니 생물과 무생물의 구분도 못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엑기! 동네 어르신네들. 억지를 부려도 유분수지. 이런 생떼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까 앞의 석물은 토끼 간을 상징한 거네요.

살아 숨 쉬는 자연석 위에 인공 조석(人工造石)을 붙여 놓으니 보기 좋습니까?

돌을 좋아하는 돌 같은 사람이 보지 않아야 할 것을 보고나니, 어찌 입맛이 꼭  쌀밥에 모래알 씹는 것 같습니다.

 

 

자연물에 인공석이라,

이 바위섬의 생성과정과 더불어 오랫동안 바닷바람과 파도에 할퀴며 세월을 이겨낸 살아있는 이 자연의 바위 위에

연마한 돌조각상을 가져다 붙인 치장물을 보고 있자니  자연에 대한 모독과 불경에 죄책감으로 고개를 들고 눈을 뜰 수가 없나이다.

 

 

 

 

동네에선 이 섬을 자라섬이라 부르고 별주부전이 유래된 마을이라 합니다. 그래서 어울리지도 않는 장치로 무대를 꾸미고 전설을 연출하고 있나 봅니다.   

그래도 그렇지. 요즘 웃을 일도 별로 없는데 웃고 갈 일이 생겼습니다.

저 아름다운 바위와 갈매기의 군무를 보세요, 자연은 훼손해선 아니 됩니다. 

 

 

정월 보름이면 이곳 자라섬에서 용왕제 행사를 치른다네요.

민속행사로 하는 것은 좋지만 바위섬 위의 인공 설치물은 바닥에 내려놓음이 자연스럽겠습니다. 

 

 

아름다운 이곳의 갈매기 군상 풍경이 더욱 정겹습니다.

 

 

 

 

 

'살아가는 모통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動)  (0) 2021.12.19
이쁜 두 분  (0) 2021.07.29
천사 가는 날  (0) 2021.03.03
나도 한마디  (0) 2021.02.26
설날의 산책  (0) 2021.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