隨緣(수연): 모든 것을 인연에 따른다.
刻意(각의): 깊이 생각하고 마음을 쓰거나 독단을 행하다.
불교의 華嚴經에 나오는 말이다.
隨緣은 노자와 장자가 주장한 것으로 불교 화엄경에 나오는 이 말은 모든 것을 인연에 따라 행동하여 일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모든 것을 인연에 따르고 형편에 따라 융통성 있게 행한다면 근심 걱정에서 해탈 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여유, 자연)
刻意는 수연과 상반된 말로 모든일에 집착하여 애를 쓴다는 것이다.(긴장, 인위)
하지만 인생은 隨緣과 刻意 ,變通과 執着, 餘裕와 緊張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자연에 맞기고 흘러가는 대로 노력도 하지 않고 살 수 만은 없지 않은가.
종교적 해석뿐 아니라 文字대로 현대적 풀이를 하여 현실에 적용해도 적절 할 것 같다.
요즘 집권 與黨인 새누리당 대표가 국회의원 후보 경선에 있어서 정권 실세파인 親朴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계파 갈등으로 隨緣이냐 刻意냐의 문제로 치달으며 옥새투쟁으로 이어진 적이 있다.
권력독점을 위한 정치적 과욕이 국민의 불신을 쌓고,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 동과 서,상류와 하류, 영남과 호남, 젊은이와 늙은이, 남자와 여자로 가르는 것도 모자라 親盧, 非盧하더니 이제 親朴, 非朴이 서로 적대감을 가지며 충돌, 보복으로 이어지고 있다. 권력의 창출이 다수결의 원칙인 민주주의가 숫자 놀음이다보니 진정한 민의인 사람의 마음(양심)은 반영하지 못하고 추악한 분쟁만이 가득한 바탕으로 전락하여 국민은 四分五裂 갈기갈기 찢어지고 나라의 앞날이 이즈러지고 있다.
이는 국민들의 본성이 변하여 이성보다 이해 득실이나 무조건 緣에 의한 쏠림에서 비롯된 것이라 여겨진다. “내사람(人口)이 많으면 권력은 내꺼여.....수단 방법을 가리지마”. 이런생각으로. -참으로 한심하다.
“동행이란 같은 방향으로 가는게 아니라 같은 마음으로 가는 것이다˝ 란 명언이 생각 난다.
당 태종의 정관의 치(貞觀의 治)
당 태종 이세민은 개국 황제인 당 고조 이연의 차남으로 626년 군사 쿠테타가 일어나자 태자인 형 이건성과 진왕으로 봉한 아우 이원길을 제거하였다. 그 길로 수도를 장악한 그는 이연과 조정대신들마저 완벽하게 통제했다. 두 달 후 , 이세민은 이연을 대신해 당나라의 황제로 즉위했다. 그가 바로 역사적인 명군으로 꼽히는 당 태종이다. 이때부터 태종이 이끄는 중앙정부는 당나라를 번영의 길로 이끌었다. 그의 연호가 貞觀이었기 때문에 ?정관의 치?라 부른다.
태종과 그의 신하들은 기적을 만들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의 역대 왕조들 역시 정관의 치를 본보기로 삼았다. 무엇이 태종을 위대한 정치지도자로 만들었을까. 그는 비극을 반성하고 바른 정치, 위민 정치로 자신의 과오를 속죄 하였다. 태종은 골육상쟁의 아픔을 치유하고 취약한 당 왕조의 반석을 굳건히 하기위해 포용과 섬김의 마음가짐으로 겸허히 국정에 임하였다. 뛰어난 재상과 무신을 발탁 등용하고 국정운영의 권한을 줘 서로 협심하도록 하여 거대한 인재대국을 건설하였다. 그는 자신의 반대세력을 과감히 포용하여 통합의 정치를 구현하였다. 형 이건성의 참모였던 위징을 건의대부로 발탁했다. 수나라 귀족세력이나 천하통일 과정에서 귀순한 세력에 대해서도 관용을 베풀어 화합과 포용의 정치문화가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여러 말을 들으면 밝아지고 한쪽 말만 들으면 어둡게 된다?는 위징의 직언을 과감히 수용하여 국사 앞에서는 군주와 신하가 상하 없이 치열하게 논박하는 조정을 만들었다. 소위 군신일체론(君臣一體論)의 구현이다.
그는 백성을 국가경영의 근본으로 생각하고 위민정책으로 일관하였다. 정관 후반 식량이 넘쳐나고 길거리에 물건이 떨어져도 아무도 몰래 가져가지 않는다는 태평시대를 구현하였다. 명목적인 국가부흥보다 백성을 잘 살게 하는 것이 중요하며 ,‘천하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라 만인의 천하’라는 자세로 늘 국민을 배불리 하고 편안케 하려는 애민의 자세를 견지 하였다.라는 당 태종의 치적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을 만도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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