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문화의 변천과 수석의 본질
소장자 미상
수석에 대한 개념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았다. 반면 그 형태나 범위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고대 수석은 전통 자연사상의 직접적 영향을 받았으며 그 형태도 크고 기이한
괴석류가 주종을 이룬다. 궁중이나 사찰 등에 보존된 전래석에서 보듯이 자연경관 그대로
를 옮겨놓은 형상이며 그 크기로 인해 대개 정원에 두고 관상하였다. 또 향유 계층이 선비나
양반등 특정층이었던 관계로 그들의 학문과 수양의 반려로써 고대 수석은 도와 예가 중시
되었다. 수석을 노불(老佛)이나 노태(老苔)에 비유하며 정신적 완성을 추구했던 것이다.
근대 수석은
에 더 가까워진 것이 특징이다. 이때부터 수석은 자연예술의 성격이 강해진다. 즉 수석을 도
나 예의 대상으로 보기보단 미의식의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확산되었다.
크기는 들어나를 수 있고 실내에 진열할 수 있을 만큼 작아졌으며, 형래도 산, 호수, 섬 등 자
연경관을 담은 산수 경석이 주류를 이루며 선호되었다. 근대 후기에는 수반 연출기법이 도입
되고 물형석과 문양석이 수석의 새 범주로 등장하는 등 새로운 변화 양상도 보였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수석인구가 대중화되고 전시와 각종 조직활동이 활성화되는 등 수석계가
활기를 띠게된다. 또 산지개발이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향토성 짙은 다양한 형태의 수석이
쏟아져 초기의 평가기준에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 여파로 산지 사정이 어려워지는 등
수석계가 급변하는 환경에 미처 대응하지 못해 혼란과 침체를 겪기도 했다. 한편, 산지 난과
인식의 변화 등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산수 경석 위주의 기존 선호 경향에서 미석류와 추상석
에, 또 크기나 산지면에서도 소품수석과 해석에 더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산지난 극복
의 대안으로 시작된 이런 현상은 차츰 수석의 영역을 확대시키면서 수석문화의 새로운 활성
화와 통로를 열었다.
진정한 애석인이 되기 위해서는 사념을 잊고 인생의 관조를 배우는 탐석, 인내와 집념으로 미
완의 정신세계를 가꾸는 양석, 수석미를 통해 심미안을 기르고 마음의 여유와 순화를 구가하
는 감상 등 일련의 수석 생활을 성실하게 실천하여 자신의 내면을 잘 정돈할 때 비로소 가능하
다.
이것은 우리가 수석을 통해 추구하는 궁극적 가치이자 변함없는 수석문화의 근본 바탕이며
표류하는 한국 수석문화의 이정표이기도 하다.
탐석 소장자 김 상 필(surod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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