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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댐은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 가는 정치사와 치열했던 냉전시대의 가장 큰 산물이다.
1987년 2월 28일 공사를 시작한 북한강 '평화의 댐'이 1989년 5월 27일 1단계 공사가 완료됐고, 중단됐다가 2005년 10월 19일 18년 만에 완공됐다.
북한 임남댐(금강산 댐)에 대응하는 댐으로 길이 601m, 높이 125m, 최대 저수량 26억 3천만 t의 남한에서 소양강 댐, 충주댐 다음으로 3번째 큰 규모이다.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에 위치한 평화의 댐은 북한이 1986년 금강산 댐 건설을 착공하자 전두환 정권이 서울 침수론을 내세우며 이에 대응하기 위한 댐 건설을 자구책으로 강조하여 건설을 하게 되었다.
'서울 물바다' 여론을 일으켜 공포심과 분노에 찬 국민과 기업들을 상대로 모금을 강요하여 범 국민이 모금에 참여케 하여, 2,001억 원(국민성금 707억 원, 국비 1,294억 원) 공사비가 들어간 것과 별도로 약 3,995억 원의 추가 비용을 들여 대응 댐을 건설하게 된 것이다.
1단계 공사는 1987년 2월 28일 총 공사비 1,509억 원을 들여 1988년 5월에 완성되었고, 그 후 홍수 조절 기능의 역할로 2002년 9월 2단계 증축공사가 시작되어 2005년 10월 19일 완공되어 현재에 이르게 됐다.
하지만 평화의 댐 건설은 수공위협을 과장하고, 이를 토대로 국민에게 불안감을 조성하여 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였다는 정황이 밝혀짐으로써 이후 대국민 사기극이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집권 정권이 주장한 북한 금강산댐 저수량은 200억 t. 북한이 방류할 경우 초당 35만 t 이 유입돼 양구, 구리, 서울, 안양 등 13개 시군이 물바다가 되고 63 빌딩 반이 물에 잠긴다 했다.
후에 감사한 결과 저수량 21.2억 t~59.4억 t, 댐 높이 121.5~155m에 불과해 거짓 선동이었음이 밝혀져 전두환 정권이 북풍에 의한 정권의 연장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것이다.
결국 평화의 댐 건설은 착공 2년 만인 1989년 10월 중단됐다. 5 공의 몰락과 함께 누구도 댐 건설의 당위성을 설명할 사람이 없었고, 공사를 맡은 몇 개 재벌급 건설회사들만 배 불린 채 국민들의 관심에서 사라진 역사의 현장이다.
이 댐은 배수 갑문이 일체 없는 콘크리트로 북한강을 통째로 막은 건류 댐으로 댐 위로 지방도 460호선이 지나가는 교량 역할만 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상류 쪽 산 밑으로 4개의 터널을 뚫어 배수갑문을 두고 댐 하류 쪽으로 흐르도록 하여 홍수조절을 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금강산 땜의 만수위 저수 물을 동시에 다 쏟아낸다 해도 여기 평화의 댐이 전부 막아낼 수 있는 용적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댐 상류
갑문이 없는 통 막이 댐이다
댐 위
지방도 460호선 통로
댐 하류
공원과 오토 캠핑장 등 유원지로 이용한다
세계평화의 종
세계 각국의 분쟁지역 30여 개 국에서 수집된 탄피들을 모아 녹여 만든 37.5톤(9,999관(貫)+1관 )의 세계평화의 종은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아 1 만관으로 주조되었으나 1관은 남북평화통일의 날 추가하여 완성하겠다고 보관 중이라 한다. 이 1관은 종 상부에 4마리의 비둘기 조형물을 설치했는데 그중 1마리 날개의 일부로 (3,75kg) 평화 통일의 날 부착하기 위해 따로 보관하고 있다 한다.
세계평화의 종은 넓이 2.5m, 높이 4.7m, 무게 37.5t이다
세게의 노벨평화상을 받은 아웅 산수지, 시린 에바디 , 달라이 라마. 김대중 대동령,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 등의 평화 메시지와 핸드프린트가 있다. 이분들과 악수라도 해 보자
여기는 휴전선 남방 10km 지점이라지만 바로 뒷 산에 철책이 있는 DMZ 지역이므로 남남 한계선에 와 있다고 봐야 하나?
화천군에서는 이곳을 평화의 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하여 댐 아래 7천여 평방미터를 종공원으로 시설하고 위에는 스카이워크를 설치하는 등 관광지화 하였다.
아흔아홉구비를 돌아가는 댐의 코스는 삼엄하다거나 엄숙함도 공포스러운 분위기는 어디에도 없다. 예민할 수밖에 없었던 60여 년의 검문검색 경비병도 눈 씻고 찾아보려도 볼 수가 없고 자유롭다.
여기가 군사분계선의 남쪽 2km 남방 한계선 접경지역인데도 말이다. 아스발트로 포장된 자유로운 통행로는 온화하고 평화로우며 여행객을 부르는 관광표지판만 뚜렷하다.
외로운 집 하나. <해오름 휴게소>가 있다.
식탁 위에 걸려있는 어느 병사의 구멍 뚫린 녹슨 철모에서 처절한 이곳 격전지 전투가 오버랩되어 다가오고, 희생된 목숨의 상징물로 보여 숙연해진다. 수수 많은 산채 주 술병에서 여기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깊은 산속임을 깨닫게 해 준다.
한 많은 세월, 총소리 대포소리 폭격소리에 밤의 역사는 어땠고 연명은 어떻게 했을까 하는 질문의 답이 고스란히 이 홀에 진열돼 있다.
함지박 산채나물밥 배불리 먹었으니 이 집의 쓸쓸하고 외로움을 공감하고 나온 것만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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