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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만행
    좋은 글 2023. 3. 12.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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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10살에 해방을 맞이했다. 1945년 8월 15일 당시 국민학교(초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방학중이었고 9월이면 3학년에 오를 시기였다. 일제강점기에 입학한 나는 일본어  아이우에오부터 시작하여 일본어 교과서를 배웠고 창 씨 개명된 이름으로 일본 교육을 받으며 철저하게 우리말을 봉쇄당하였다.

     

    만약에 학교에서 우리말을 하다가 걸리면 처벌 받았다. 바킹제도가 있어서 우리말을 하였다가는  듣는 사람이 바킹하면 그에게 바킹을 뺏기게 되어 있어서  바킹을 많이 빼앗긴 학생은 벌을 받게 하여 우리말을  말살하고 있었고,  뒷 산에 신사(神社)를 세워 놓고 전 학생이 조회시간에 밴드부를 앞세우고 참배 행렬을 이루어 나가서 신사참배를하고 돌아왔다. 신사참배를 강요함으로써 대한의 어린이를 일본사람으로 만드는데 온갖 수작을 다 하였다.

     

    2차 대전 중이었으므로  운동장 한편에 방공호 파기와 방공연습은 물론 유사시에 대비한 대포도 설치하여 놓고  군사훈련도 강행하였다.

    그뿐인가, 우리나라의 젊은 청년은 징용과 징병으로 일본의 전쟁터로 끌려가  일본침략전쟁의 총알받이가 되엇고 죽도록 중노동과 착취에 시달렸다. 노동자 들은 갖은 고생하다가도 무참히 학살을 당하거나 비통한 생을 마감하도록 하였다.

     

    우리 아버지께서도 강제 징용으로 함흥까지 가서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가 해방을 맞아 다행히 돌아오시긴 하였으나, 집에 아버지가 안 게시는 동안 농촌에서 어머니 혼자서 배고픔과 허기를 달래며 가정을 책임지고 이끌어 가던 비참하고 서글펐던 시간이 있었던 걸 생각하면  일본의 만행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우리집에서  사용하던  놋 대야와 사발 수저 젓가락 심지어 촛대 까지도 놋 쇠라면 무조건  총알 만드는데  사용한다며  전부 수탈해갔다.

    우리나라의 토지를 빼앗은 일본인 들은 소작인에게 농사를 짓게 하여 소작료로 수확량의 50 %를 강제로 받아 갔고, 뼈아프게 농사를 지어봤자 식량이 부족하여 항상 춘궁기가 돌아오면 초근목피를 면할수 없었다.  추수 후에 들판에서 이삭 줍기를 하던 때가 생각난다.

     

     

    이를 용서하겠다고 나선 대통령의 금년 3.1절 행사를 보니 과거 어렸을 때의 나라 잃고 일제의 만행에 고생했던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흘린  피눈물과 내가 격은 성장기가 오버랩되어 자꾸 눈물이 고인다.

     

    2013년에 박윤식 목사의 저서  <대한민국 근현대사 시리즈>를 선물 받아 실감있게 읽은 적이 있는데,  제1권에 실린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만행에 대하여  실제로 있었고 내가 보고 겪은 사실들을 소상히 밝히고 있어서 우리 국민이라면 반드시 읽고 깊이 명심해야 할 쓰라린 역사이기에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나라의 부패와 붕당정치,  당파싸움,  쇄국정치 등으로 국권을 일본에 빼앗겨 어두운 36년을 노예처럼 살아온 교훈을 각성하지 못하고,

    작금 남북대치와 지역갈등을 조장하며  국민을 분열시키고 있는 패거리정치 권력자들에 의한 부도덕과 민주주의 말살행위야 말로 총칼로 국민을 제압한 군사정권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이 실추되고 있는 국격과 국력, 민주주의를 무엇으로 언제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말이다.

     

     

     

     

    저자 서문에서

     

    일제 강점기

     

    잊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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