水墨鷺圖(수묵노도)
성삼문(成三問)
雪作衣裳玉作趾(설작의상옥작지) 흰 날개와 긴 발로
窺魚蘆渚幾多時(규어노저기다시) 물가에서 고기를 엿본지 얼마인가
偶然飛過山陰縣(우연비파산음현) 우연히 날개 펴 산음현 지나다가
誤落羲羲之洗硯池(오락희지세연지) 잘못하여 왕희지 벼룻물에 떨어졌네.
이 시는 성삼문이 명나라에 갔을 때 어떤 문신이 시문에 능하다는 그의 명성을 익히 알고 족자 그림을 보여 주며 화제(畵題)를 지어 달라고 해서, 그 자리에서 붓을 들어 일필휘지로 쓴 즉흥시 입니다.
성삼문의 기발한 상상력은 살아있는 한 마리의 학을 왕희지가 벼루를 씻던 산음현 못에 빠져버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왕희지는 동진시대 명필로 중국 희계산 북쪽 산음현에서 벼슬살이를 할 때 "난정(蘭亭)"이라는 곳에 선비들을 모아 함께 글을 짓곤 했습니다. 그 당시의 글을 모은 것이 난정집서(蘭亭集序)인데, 왕희지는 그 책의 서문을 써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성삼문은 바로 족자 그림 속의 학이 하늘을 날아올라 멀고 먼 산음현, 그것도 왕희지가 살던 아주 오래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벼루씻던 못에 빠뜨렸습니다. 대단한 비약이 아닐 수 없습니다.시공을 초월하는 상상력입니다.
어쩌면 족자의 그림은 성삼문의 화제시로 인하여 비로소 살아 있는 한 마리의 학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가희 화룔점정(畵龍點睛)의 경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