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예

소창다명사아구좌(小窓多明使我久坐)

서로도아 2017. 11. 12.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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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窓多明使我久坐(소창다명사아구좌)

-秋史 (阮堂) 金正喜

 

조그마한 창문에 햇빛이 밝아

나로 하여금 오래 앉아있게 한다

 

추사 김정희는 경주 김 씨 명문 집안으로  그의 증조부는 영조의 사위였던 월성위 김한신이며, 그의 아버지 김노경은 예조판서부터 이조/ 공조/형조/ 병조 판서를 두루 지낼 정도로 막강한 권세가였다.

추사 역시 문과에 급제하여 세자시강원 설서(세자의 교육담당), 충청우도 암행어사, 성균관 대사성, 이조참판등을 역임했으나, 정치권의 패권다툼으로 윤상도 옥사에 연루되어 정적 안동김씨의 탄핵으로 추사 나이 55세 되던 1840(현종6년) 제주에 유배되어 9년 동안 위리안치(圍籬安置: 처소 둘레에 가시나무 울타리를 쳐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가두는 형벌)의 세월을 보냈다. 이곳에서 그는 독자적인 추사체( 秋史體: 붓글씨체)를 완성하였고, <완당집>을 편집 하였으며 그의 최고 명작으로 꼽히는 <세한도(歲寒圖:국보제180호)>를 완성 시켰다. 또 지방 유생들에게 서예와 글을 가르치며 제주지역 학문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1786년 6월3일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서 태어나 1856년 10월 10일 71세로 일생을 마감했다.


 


추사의글씨

 

 

세한도

 

 

 

 

제주 유배지에 세운 추사관(2010.5 건립)

 

 

추사 김정희선생의 흉상

 

                                                    

                                                    독특한 秋史體 글씨와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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