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락

하피첩의 전설

서로도아 2015. 10. 11. 17:16
728x90



하피첩의 전설 / 다산 정약용



하피첩(霞帔帖)에 관한 소견은 2014.9.26자 본 Blog'서예' 카테고리에 이미 소개한 바 있다.

     이 하피첩은 2011년 부산저축은행의 금융사고로 파산 당시 압류했던 것으로 예금보험공사에 의해 

'보물'지정 국가 문화재에 대해 2015년 9월 14일 서울 옥션에서 경매가 실시됐다. 이 중에 다산 정약용

필적 하피첩(霞帔帖)이 7억5000만원에 국립민속박물관이 사들였다.

세상에서 영영 사라질 뻔한 문화재가 기적같이 구출돼  2006년 KBS 진품명품에서 1억원을 매긴 이래

고미술품 수집가의 손을 거쳐 국립민속박물관에 이르기까지 개인이 소장하여 세상에 떠돌다가 공공

박물관이 매입해 국민의 품에 안기게 됐다. 

다산은 천주교를 믿었던 죄로 1801년 마흔의 나이에 전남 강진으로 귀양을 갔다.  경기도 양수리 마재

에 남았던 아내 홍씨는 남편 귀양 10년째 되는 1810년 자기가 시집올 때 입었던 치마를 남편에게 보냈다. 남편에 대한 그리움, 홀로 떨어져 고생하는 남편을 애틋해 하는 마음을 신혼 시절 색 바랜 다홍치마에

담았다. 그 치마에 다산이 아들 둘에게 삶의 철학과 인생의 지침을 쓰고 이를 재단해 책자처럼 만든

이 '하피첩'이다. 다산은 치마 한 조각을 남겨 매화와 새(매조도)를 그린 족자를 만들어 시집가는 딸

에게도 주었다.







딸에게 보낸 매조도



茶山 丁若鏞(1762~1836)은  조선 후기의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한국 최대의 실학자이자 개혁가, 시대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개혁과 개방을 통해 나라의 살림을 넉넉히 하고 백성이 행복할 것을 주

장했다. 18년간 오랜 귀양살이를 했으나 좌절하지 않고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방대하고도 후대에

요한 500여권의 책을 저술 하였다.


목민심서(1818): 관리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바로잡아 백성들의 삶의 질을 높이려는 취지로 쓴 저술.

통치의 근거는 백성을 위해 있는 것이라는 그의 사상이 담겨 있다.

경세유포(1817): 조선사회의 정치적인 모순을 극복하여 나라를 새롭게 하기위한 정책제안서. 행정기

의 개편을 비롯하여 관제, 토지제도, 부서제도 등 모든 제도의 개혁 원리를 제시 했다.

흠흠신서(1822): 법률학에도 해박했던 다산이 실제 일어났던 사례를 바탕으로 판결과 형벌, 규범에

대해 다룬 형법서다. 사람의 생명에 관한 일을 가벼이 처리하지 않을 것을 당부하고 있다.






'뜨락'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근하신년  (0) 2016.12.31
새해 아침  (0) 2016.01.01
을미년 새해를 맞으며  (0) 2014.12.31
하늘에 핀 꽃구름  (0) 2014.09.05
줄 여(與)  (0) 2014.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