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줄포에서

서로도아 2014. 10. 4.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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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포에서

                                                             이상국

 

동해(東海)에서 조반을 먹고

줄포(茁浦)에 오니 아직 해가 남았다

나라라는 게 고작 이 정도라면

나도 왕(王)이나 한 번 해볼걸

큰 영(嶺) 하나만 넘어도 안 살아본 세상이 있고

해 질 때 눈물나는 바다가 있는데

나는 너무 동쪽에서만 살았구나

해마다 패독산(敗毒散) 몇 첩으로 겨울을 넘기며

나 지금 너무 멀리와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몰라

그래도 며칠 더 서쪽으로 가고 싶은 건

생(生)의 어딘가가 아프기 때문이다.

 

이게 아니라고

여기가 아니라며 추운 날

기러기 같은 생애를 떠메고 날아온

부안 대숲 마을에서

되잖은 시(詩) 몇편으로 얼굴을 가리고

몰래 만나는 여자도 없이 살았다고

지는 해를 바라보고 섰는데

변산반도 겨울 바람이

병신같이 울지 말라고

물 묻은 손으로 뺨을 후려친다.

 

나는 너무 일찍 서쪽으로 온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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