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신부

서로도아 2014. 10. 28.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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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

                                       미당 서정주

 

신부는 초록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 일이 생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스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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