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모통이

벽(癖)

서로도아 2013. 12. 14.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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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벽(癖)

 

 

벽(癖)이란 사전적인 의미로  무엇을 치우치게 즐기는 성벽(性癖), 고치기 어렵게 굳어버린

버릇을 일컷는다.

속된말로 '괴짜'라 할 수 있고, '마니아'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癖자의 부수는 병들어 기댈

녁(疒)자로 일종의 질병 혹은 병폐로 치부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선인들은 '癖'을 단순한 질병이나 병폐로만 치지 않았다.박제가는 "벽이 없는 사람은 버림받은 사람"이라고 규정했으며, 소품문의 대가인 장대(張岱

 1597~1679년)는 아예 "벽(癖)이 없는 자와는 사귀지도 마라"고 했다. 그는 그 이유를 "벽이

으면 깊은 정도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사람들 가운데는 자신의 벽을 못내 자랑하는 이들도 있었다.  특히나 책을 좋아하고

시 읊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은 스스로를 서음(書淫), 혹은 전벽(傳癖), 시마(詩魔)등으로 칭

하며 은근히 자랑했다.

술과 거문고, 시를 세 친구(三友)로 삼은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는 <취음(吹吟)>

에서 "취한 술기운이 또 시마(詩魔)를 일으켜 정오부터 슬피 읊은 것이 저녁에 이르렀다."

(酒狂又引詩魔發  日午悲吟到日西)

두보(杜甫 712~770)는 <江上値水如海勢聊短述>에서 "나의 성격은 좋은 싯구를 몹시 탐내어

시어가 사람을 놀라게 하지 않으면 죽어도 그만두지 않겠노라" 하였다.

(爲人性癖耽佳句 語不驚人死不休)

우리나라 사람 중에도 지나친 독서로 과로로  요절한 성간(成侃. 1427~1456)이 있는가 하면,

'홍길동전'의 저자이며 희대의 풍운아 교산 허균(蛟山 許筠1569~1618) 은 오거서(五車書)가 언제고 따라다닌다 (五車行輒隨)라 했고, 최고의 금석학자이자 고고학자인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는 금석벽(金石癖)으로 친다.

이외에도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시벽(詩癖)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어쩌다가 딱한 이 늙은이가 시벽과 주을 함께 가졌네, 죽은 뒤에야 이 병도 없어질 것"이라 했다.

(奈何遮老子, 俱得詩酒癖, 方死始可息)

그러면서도"지금의 고질병은 죽지만 않으면 낫겠지만 시벽은 멈출 수가 없다"고 했다. 시병은

죽을 때까지 못말리는 병이라는 것이다.

이밖에도 희한한 벽(癖)의 소유자가 많았다.

예컨데 죽림칠현의 중심인물인 혜강(嵇康 232~262)은 '단벽(鍛癖)'으로 유명했다. 벼슬에 구

애받지 않고 초야에서 쇠를 두들기는(鍛) 대장간을 운영하며 청렴하게 살았다. 풀무질을 유독

좋아해서 벗인 향수와 마주앉아 풀무질하며 방약무인(傍若無人)했다고 한다. 또 당나라 때

은둔의 선비라는 육우(陸羽733~804)는 '다벽(茶癖)'으로 유명했으며, 차 상인들로부터 '다

(茶神)'의 칭호를 얻었다.

북송의 서 화가인 미원장(米元章, 米黻, 米芾, 米顚, 米痴 1051~1107)은 '석벽(石癖)', 즉 돌에

미친 사람이었다. 얼마나 돌을 애호했던지 기석(奇石)을 보면 그 돌을 향해 절(拜)하면서 '사부

님'이라 불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또 원나라 화가인 예찬(倪瓚1301~1374)은 '결벽(潔癖)'으

로 역사에 이름을 알렸다.

이밖에 역시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완적(阮籍 210~263)은 '가슴에 불 덩어리가 있어서 술을

부어야 한다'는 '주벽(酒癖)'으로,  서진의 왕제(王濟)는 지독한 말(馬)사랑으로 '마벽(馬癖)'으

로 이름을 떨쳤다. 

이처럼 습벽(習癖)에는 약이 없다. 그런데 고전이 아니더라도 현대를 살아가는데는 벽성이

필요소가 아닌가 싶다. 단순히 나쁜 버릇이 아니고 좋은 취미를 넘어 전문가가 되기 위하여는

벽에 접근하지 아니하고는 고달프고 불가능 하기 때문이다.  옛날과는 달리 직업과 직종이

전문화 되있는 현대사회에서  직분을 수행함에 벽성(癖性)을 요구하기도 한다. 또한 좋은

습벽은 남과 나를 구분하는 잣대가 되어 여생을 즐기며 사는데 한 몫을 차지하기도 한다.

 

 

 

 

                                                           2013.12.樂石 書

 

이규보의 시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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