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하루를 맞으며
정월 달의 달력을 넘긴다. 나는 한 장의 달력을 넘길 때마다 아쉬움을 느낀다. 무엇인가 일을
끝내지 못하고 넘기는 듯 한 아쉬움, 지나간 시간이 너무도 아깝다는 생각, 그래서 그래서인지
지난 달력을 찢어 없애는 것보다 위로 접어 끼워 두기를 나는 좋아한다. 일의 일의 연속성과
결과를 반추할 수 있다는 느낌에서다.
그런데 주어진 시간에 할 일이, 하고 싶은 일이 그처럼 많은 걸까? 아니다, 그렇다.
이번 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한겨울의 날씨이다. 밤새 내린 눈이 빙판길을 이루고 지상
의 모든 것이 새하얀 눈 속에 갇혀 영하의 기온에 떨고 있긴 해도 찬란한 태양 빛은
양지바른 창문을 뚫고 거실 깊숙이 스며든다.
나는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들고 여린 생명을 싹 틔우는 지화초들의 속잎을 어루만지며 홍
민의 '고향초'CD를 꺼내 음향을 띄워 본다. 조용하고 안정된 소리가 밝은 공간 속으로 펼쳐
진다.
세월은 참 빠르구나. 이러는 사이 또 달력을 뜯는다.
여기에서 원철스님의 노트를 열어보자.
"이제 인생을 반추해 볼 나이가 되었다. 살아갈 날보다도 살아온 날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되돌아본 기억은 별로 없다. 철부지이기도 하고 또 늘 해야 할 일이 많
았던 까닭이다.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또 돌아서서 생각해 보니 사실 별로 손에
쥔 것이 없다. 하긴 인생이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고 하지 않았던가. 빈손으로 왔
다가 빈손으로 간다고 했으니 남는 게 없는 게 당연한 이치이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은 뭔가
휑하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늘 뭔가를
남겨두어야 한다는 또 다른 부채의식이 심연에서 스멀스멀 일어나고 있었다. 아마 모르긴 해
도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 봐야 그것도 욕
심일뿐이다. 살다 보면 이름이 남는 것이지, 이름을 남기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닌 탓이다."
-후략-
'문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륜(天倫) (0) | 2013.09.21 |
---|---|
송구영신(送舊迎新) (0) | 2012.12.27 |
호칭 유감 (0) | 2012.01.06 |
謹賀新年 (0) | 2011.12.31 |
조강지처(糟糠之妻) (0) | 2011.1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