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 아내 처 지: 갈지 강: 겨 강 조: 지계 미 조
조강지처
지게미와 쌀겨로 끼니를 이어가며 고생한 본처를 이르는 말로,
처녀로 시집와서 여러 해를 같이 고생하며 살아온 아내를 일컫는다
우리는 대가족 시대를 살아오면서 그동안 많은 집안의 혼사를 치렀고 또 남의
식장에 참여도 하여왔다.
예전에는 신부의 집에서 전통혼례 방식으로 예를 치렀지만 요즘은 대부분 예식
장에서 행해진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지를 모셔다 놓고 진지하여야 할 의례가 지나
치게 허례적이거나 경망스럽기까지 하다. 주례의 충고와 격려, 부부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덕목도 다짐을 주어 역설(力說)하지만 귀담아듣고 새기려는 사람이 별로
없다. 요란한 서양식 이벤트 행사에 묻혀 혼란스럽다 할만하다.
그러나 나에게는 시대가 흐를수록 더욱 각인되는 딱 하나의 주례사가 있다.
한글학자이시며 바른말 고운 말로 유명한 고(故) 눈메 한갑수(韓甲洙) 선생님의 주
례사이다. 1978년 1월 15일 둘째 아우의 결혼식 때에 주례로 모셨다.
한갑수 선생님은 결혼식이 시작되자 식장으로 통하는 창문을 모두 닫게 했다. 외
부로부터의 소음을 차단하고 식장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에 이르자
주례를 집행하기 시작했다.
하객들은 시종 주례의 한 말씀 한 말씀을 놓치지 않고 경청하고 새겨듣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의 고귀한 말씀이 한 세대를 지났어도 이 시대에 더욱 절실하기에 머릿
속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주례사
우선 제가 신랑 신부에게 부탁 말씀하기 전에 자리를 가득 채워주신 하객 여러분
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중략
오늘 여러분이 귀한 시간 내주시고 물심양면으로 축복을 베풀어 주신 가운데
신랑과 신부가 진지한 서약을 맺었습니다
요새는 서약이라는 말로 이렇게 신랑 신부가 손을 들고 주례가 물으면 대답을 합
니다만, 옛날에는 전안이라고 하는 신랑이 신부집에 기러기를 가지고 가서 상 위
에 놓고 절을 하는 서약 절차가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의 몸뚱이 만한 70근 되는 기러기에게 다섯 번 절을 하는 예식이었는데 옛날
에는 육례를 갖춰 혼인을 했으니까 혼인 예식에는 여섯 번의 아주 까다로운 절차
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여섯 번의 절차 중에서 다섯 번은 산 기러기 암놈, 수놈을
놓고 "전안"이라는 결혼 서약을 하는데 그 절차가 복잡하고 엄숙하여 비용도 대
대단이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것이 조선조 초임에 두 번으로 줄더니 19대 숙종 때 한 번으로 줄였고 다시
22대 정조대왕 때 가서는 아예 산 기러기를 쓰지 않고 나무로 깎은 기러기를 쓰기
시작하여 점점 줄어들고 변하다 보니 이젠 "전안"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아
졌으며 그 단어마저 없어져 가는 세월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고유한 그 참 뜻은 "결혼서약"에 있는 것이었기에, 그만큼 결혼서
약은 "인륜지대사"라는 말로 중하게 여기는 행사였기에 이 자리를 빌려 말씀 올려
습니다.
지금 우리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혼인 서약에서 주례가 묻는 말을 신랑 신부가
"네"하고 아주 진지하고 엄숙하게 대답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이 혼인하기 전 다섯 번이나 서약을 했던 이유가 결혼식이라는 것
은 여러 하객을 증인으로 서약을 하기 위한 행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절차를 신랑과 신부가 잘 이행을 했습니다
중략
이어서 부부의 인연이 어떤 것 인지를 모든 분이 새기도록 다음과 같은 조강지처
(糟糠之妻)에 대한 고사(故事) 하나를 재미있게 이야기하시어 진지하게 들었다.
후한서(後漢書) 송홍전(宋弘傳)에 보면,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는 누이이며
일찍이 과부가 되어 쓸쓸히 지내는 호양 공주(湖陽公主)가 있었는데 그녀는 대사
공(大司公)인 송홍(宋弘)을 마음에 두고 좋아하고 있었다. 광무제는 이를 눈치
채고 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시집을 보낼 생각으로 그녀의 의향을 떠 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송홍 같은 사람이라면 시집을 가겠다고 하였다.
마침 송홍이 공무로 편전에 들어오자 광무제는 누님을 병풍 뒤에 숨기고 그에게 넌
지시 물었다.
"속담에 말하기를 지위가 높아지면 친구를 바꾸고 집이 부유해지면 아내를 바꾼다
하였는데 그럴 수 있을까?" 하고 말하자 송홍은 서슴지 않고 대답하였다.
"신은 가난할 때 친하였던 친구는 잊어서는 안 되고, 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며 고생한
아내는 집에서 내보낼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貧賤之交는 不可忘이요 糟糠之妻는
不下堂입니다)"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광무제는 송홍의 말 뜻을 알고 누님이 있는 쪽을 돌아보며 조용한 말
로 "일이 틀린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하고는 송홍에게는더 이상 누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한다.
후략
쟁쟁한 목소리와 진지한 화법으로 하객들을 숙연한 마음가짐으로 쏙 빠져들게
한 한갑수 선생님의 주례사 내용이었다. 쉽게 맺고 쉽게 헤어지는 서양의 결혼 풍습
에 쐐기를 박는 조강지처란 고사성어의 새김이 물질만능의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정
신적으로 큰 지주(支柱)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서 오래된 것을 들춰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