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모통이

탄천이야기

서로도아 2022. 7. 4.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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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말일  폭우에 탄천의 꽃밭이 얼마나 시달렸을까? 

시(市)에서는 탄천의 고수부지  한편에 시민을 위한 꽃밭을 조성하여 금년에 처음 개장하였다 

 

장마 때 큰 비가 내리면 의례 침수되는 고수부지에 꽃밭을 조성하는  자체가 좀 무모한  사업 같기도 하여 염려스러웠다.

 

그러나 잡초만 무성하던 부지에 고운 잔디와 아기자기한 보행길을 만들고 따라 조성한 꽃밭인데 심한 가뭄으로 식생식물이 잘 자라지 못하더니, 늦게나마 한차례 비를 맞고 무럭무럭 자라, 꽃나무는 고운 봉우리를 터드리기 시작하고 드디어 꽃밭 형태를 드러내어 많은 시민이  환호하며  휴대폰에 담고 좋아했다.

 

 

 

 

장마 뒤에 싱싱하게 더욱 활짝 핀 백합꽃 단지의 향기를 연상하며  웃는 모습이  기대되어 걷기운동도 할 겸, 오후 5시경 반바지 차림으로  꽃밭으로 향했다.

그런데 멀리서 보니 꽃밭에는 불도저가 와 있고  단지 앞 탄천의 다리 밑에 세워둔 자전거들이  잡초를 뒤집어쓰고 휘어진 채 거치대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처참하게 짓밟고 할퀸 수마자국이 너무도 선명하여 그만 가슴이 철렁 내려 안고 말았다.

 

 

 

 

정원사인 여자 한분이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어 보겠다고 봄부터 종일 매달려  물을 주고 풀을 뽑고  수많은 종류의 꽃을 적재적소에  모듬모종을 하면서 심한 가뭄에도 애지중지 가꾸는 것을 보았다.  초토화된 꽃밭은 불도저가 밀어 버리고  있으니  애써 가꾼 초화들 다 피워 사랑해 보지도 못한 채  하룻밤 사이에 날려버린 사람의 그 실망과 아픔이 어떠 했을까.

 

 

그래도 수해 현장을 떠나지 않고  지키며,  또 무슨 꽃나무를  옮겨 심고 빈 땅을 채울런지 흙밭을 고르며 재기할 꿈을 구상하고 있는  그분의 안타까운 모습이  불도저 옆으로 보인다. 

나는 피땀으로 이룬 열정이  수해로 녹아버린 꽃밭 현장을 둘러보고  더위를 피해 다리 밑 나무의자에 앉아 잠시 땀을 훔쳤다.   

 

 

 

 

 

탄천의 수위를추정컨대, 천변 버드나무에 걸터 앉은 부유물로 높이로보아  지상 약  2m 까지 물이 찻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어둡기 전에 다른 곳도 둘러볼 심산으로 상류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탄천의 냇물은  지금도 세차게 흐르고 있고 탄천변을 워킹하는 시민들 수가 해가 기울자 차츰 늘고 있다.  탄천이 꺾여 흐르는 고수부지의  잔디밭에는  쉼터로 마련한 바위덩이 같은 잘 닦인 돌 탁자와 돌 의자가 있다. 이  탁자의 지반은 웅덩이처럼 파이고  시설물은 뽑혀 부유물에 쌓여 내뒹군다.

 

 

 

나는 쌓인 부유물 속에서  생명이 붙은 나뭇가지 하나를 발견하고 기울어 누은 돌 탁자 위에 먼지를 털어서 앉혀주었다.

외형 포즈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이 나뭇가지의 맵시를 두루살피며  생명을 불어 넣기에 정신이 팔렸다.

"언제나 나 여기 있게 해 줘요" 한다.

'그러기엔 너무 늙었어,  팔 다리 상처 투성이고 독립하긴 어렵겠어, 이게 나의 속 마음인걸.

나 는 충분히 그의  호소를 받아드리며 시간의 참 재미를  느끼고있었다.

날이 어두워져  탁자 위에서 잠들도록 놓아두고 슬그머니 나왔다.

 

 

 

 

 

 

 

 

 

 

 

 

 

 

 

 

 

다리 쇠말뚝 난간대를  넘쳐난 물살이 부러뜨렸다. 

 

오랜 가뭄에 물주머니를 차고 있던 고수부지 위의 거목들도 부유물에 휩싸여 이불을 덮고 있는 듯하다.

이제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귀로에 잠시 쉬면서  저녁을  먹을 생각으로 카드를  찾아보나 포켓마다 비어 있다.  또 한 번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집에 놓고 나왔나?  아니지  카드들어 있는 지갑을 분명 바지 주머니에 넣고 나왔는데,  5만 원권 지폐 한 장도 넣어서.

 

외식을 포기하고 일단 집으로 갔다. 아무리 찾아봐도 그 지갑이 없다.  그 안에는  신분증과 중요  신상 카드들이  다 들어 있어서  나와 함께 움직이는 생명줄이다. 아,  탄천 보행 중 분실된 게 틀림없다 단정하고, 분실신고가 먼저냐  아니면 일단  다시 찾아보느냐.

 

오후 8시 랜턴을 들고 탄천으로  달려갔다. 행적의 역순으로  돌았다.  앉아서 쉬었던 서너 곳을 샅샅이 살펴보았으나 헛일이다. 사람의 왕래가 많았고 날이 어두워 가망이 없는 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 심리 하나로  끝까지 찾아볼 요량으로 처음 꽃밭 장소로 향해 걸어 갔다.

탄천의 물 위에 반사된 빌딩의 불빛이 유난히 밝다.

 

 

내 휴대폰에 벨이 울린다.  열어보니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걸려왔다.  아니 내 집에 무슨 비상 연락할 사고라도 생겼나? 아, 이제 내 지갑을 찾았구나 하는 두 가지 생각이 순식간에 교차한다. 

 

"ㅇ동 ㅇ호 사시는 ㅇ이시죠?  혹시 지갑을 잃어버렸나요? "

"예  지금 찾고 있는 중인데요."

" 지갑을 주은분의 전화를 알려드릴 테니 연락을 해 보시죠" 

이 아파트 숙직자의 음성이 그렇게 달고 맛있고 아름다울 수가 없다.

이제 어둠 속의 지갑 찾기는 끝났다.  비(悲) 가 희(喜)로 둔갑하며  상황이 역전되어 긴장이 해체되는 순간이다.

 

인생 일 막이 끝나고 이제 2막이 시작이다.

지갑을 주은 사람이  어디 사는 누구이고, 언제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전달받을까.  상대의 신상이 궁금할 뿐이다.

"제가 오늘 탄천에서 지갑을 잃은 아무개인데요"

"네에, ㅇㅇ음식점을 아십니까?" 중년 남성의 목소리다. "그  앞에 GS25  편의점이 있습니다. 그 앞으로 오셔서 전화를 주시면 나가겠습니다"

 

말소리가 온화하고 교양 있어 보여 안심이 된다.  다행히 이곳으로부터  10여 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라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고수부지를 따라 걸었다.  낮의 꽃밭을 지나 천천히 뚝방 위로 올라가 약속 장소 앞에 이르러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조금 후 지갑을 들고 나온 분은 남자가 아니고  중년의 여자이다. 

"아니 남자분과 통화를 했는데요?"

"지갑을 제가 주었어요" 

"어디에 떨어뜨렸던가요?

"교각 아래 의자 밑에서요"

"감사합니다. 앉아서 땀을 닦느라 손수건을 꺼내며 포켓에서  같이 빠진 것 갔습니다.

 

이렇게 좋은 일 하기가 쉽지 않은데 ,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군요."

"아니요 아니요"  손사례를 친다.

"안에 내용물이 다 있는지 확인하여 보시지요. 돈도 5만 원이 있고" 

"그럼 사례라도 하고 싶은데 받아...?"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펄적 뛰며 뒤돌아 보지도 않고 도망치듯 달아나 버린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의 선행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감명에 겨워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후기 : 이 세상에는 바른 사람과 그른 사람이 같이 존재한다.  그리고 내 지갑 속엔 신분증과 카드가  같이 존재한다.

           분실된 지갑을 빨리 되찾은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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