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예

난정서(蘭亭序)

서로도아 2019. 5. 4.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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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희지의 난정서( 蘭亭序)는 서예를 입문하는 분이라면 누구나 행서체의 으뜸 교본으로 삼는다.

그의 진적(眞跡)은 전해지지 않으나 모본 십칠접(十七帖)과 집 왕성 교서  (集王聖敎序)등의 탁본이 전해지고 있다.  

그는 한(漢)나라때 시작된 해서(楷書), 행서(行書), 초서(草書)의 실용적인 서체를 예술적인 경지로 승화시킨 인물이다.

 

 

 

왕희지(王羲之 321~379 東晉시대)

사성(書聖)으로 일컬어지는 중국 최고의 서예가로 , 명문가 출신이었으나 중앙정부의 요직을 얻지 못하고 있다가, 351년(永和 7년) 회게내사(會稽內史)이자 우군 장군(右軍將軍)에 임명되어 산음현으로 부임한다. 353년(永和 9년) 계사(契事)가 열리는 기간에 자신의 아들 7명을 포함해  41명의 문사들을 난정(蘭亭)으로 초청해 연회를 연다. 이때 시를 짓고 술을 즐겼다는 내용이 기록으로 나온다.

이날 지은 시를 모아 철을 하고 그 서문을 왕희지가 썼다. 이 서문이 바로 그 유명한 "난정서"이다.

왕희지의 글을 너무나 좋아하던 당 태종은 이 "난정서"를 손에 넣은 후 애지 중지하였는데 임종 시에 난정서를 자신과 함께 순장할 것을 유언으로 명하여 무덤 속으로 가져가 진본이 영구히 사라졌다 한다.

지금 사용되고 있는 난전서는  원본을 베껴 쓴 임본(臨本)및  모본(摹本)으로 500여 종이 넘는데 필사본이니 글자나 체가 제각각이라 한다.  우리나라에선 서법 본으로 동진의 왕희지 집자성교서(王羲之集字聖敎序)를 주로 아용하나 필자는 이 외에도 난정서(蘭亭敍), 왕희지 난정서(蘭亭序)등의 서책을 더 보았다.

 

蘭亭序 行書體

 

 

2013년 9월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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