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락

백넘버 56

서로도아 2017. 8. 26.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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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넘버 56


야구선수였냐구? 아니다.  

학번도 아니고 별명도 아니다.

평생 나를 지탱해준 나의 몸이다.


56에 매인 지난 일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나는 한 때 공안직 공무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날씬한 몸매에 해병대 정복을 입고 나타난 의젓한

휴가병에게

사윗감으로 낙점 신호를 보낸 것도 우리 장모님이다.



국가에서 시행하는 공안직공무원시험에 먼저 조건이 붙었

신장 165cm, 체중 56kg 이상 

키야 신축성이 없어 문제가 없다지만  평소 체중이 55kg  정도인 나로서는

조건이 암초였다. 여기에 미달되면 필기시험 응시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전 실시하는 신체검사 통과를 위해 체중을 올리는 방법을 마련해야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체중을  늘릴 수는 없고 결국 신체검사 당일 음식을 많이 먹고

계체량시에만 순간적으로 미달을 방지하면 되지 않겠나 싶었다.

  

응시차 상경한 나는 숙소를 정한 다음 신체검사 전날 일찍 잤다. 

아침에 일어나 미리 물 2 컵을 마셨다. 

그리고 아침도 설렁탕으로 하고 또 물로 배를 팽팽히 채웠다.

이쯤이면 체중문제 무난히 통과되리라 믿고 신체검사장으로 갔다.

그런데 체중측정도 하기 전에 그만 참지를 못하고 화장실에 가고 말았다.

참고 참았던 소변 다 쏟아내면 낭패다. 

그래서 최소한으로 급한 불만 끄고 나왔다.

펀안히 체중계에 올라섰다.

56kg. 신체검사에  합격했다. 그리고 그 뒤에 화장실에 가서 못다한 일을 싹 정리했다.

그리고 필기시험이야 자신 있었기에 좋은 성적으로  당당히 합격했다.

6년 간 제복을 입고 근무하였지만 결근 한 번 한 일이 없었다.

 

이 56은 나의  건강한 삶을 지탱해준 평생의 몸 무게가 됐다.

좀 늘었다 줄었다는 하였지만  크게 벗어나지 않고 꾸준히 유지해 준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6.25사변 전쟁까지  온갖 가난과 배고픔의 고초를 겪으면서 자란

리 세대였기에 배부르고 살 찔 겨를이 없었다하지만 어려서 부터 체질은 강하나

한 번 고정된 체격 바꾸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은 군더더기 살이 만병의 근원이 되어 동시대의 비만형 동료들이 일찍부터

병마에 시달리며 몸무게와의 전쟁을 치루는 것을 보면 좀 부족하지만  요즘 이 시대를

살아가기에는 내가 오히려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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