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예

春望

서로도아 2016. 8. 26.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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杜甫의 詩

春望(봄날의 소망)


國破山河在(국파산하재)

城春草木深(성춘초목심)

感時花濺淚(감시화천루)

恨別鳥驚心(한별조경심)

烽火連三月(봉화연삼월)

家書抵萬金(가서저만금)

白頭搔更短(백두소갱단)

渾欲不勝簪(혼욕불승잠)

나라는 파괴되었으나 강산은 그대로이니

성에는  봄이 오고  초목이 우거졌도다. 

어수선한 시절을 생각하니 꽃을 봐도 눈물이 흐르

이별(가족과의)을 한탄하니 새소리에 마음이 아프다

봉화불(적의)은 석달동안 연이어 오르니 

집에서 온 서신은 만금만큼 소중하다 

흰 머리는 긁을수록 더욱 짧아져

거의  비녀를  이기지 못하겠구나.


전란으로 인한 황폐한 모습,  상심,  가족에 대한 그리움,  늙고 쇠약해진 자신에 대한 한탄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杜甫 (字 子美 712~770)는 李白(字 太白 701~762  )과 함께 詩聖과 詩仙 으로 불려지는 중국 二大 시인이다.


장안에서의 두보의 생활은 불우하고 궁핍한 것이었다. 그의 시는 사회의 불합리한 실정을 그려냈다.

唐은 초기에 전공을 거두어 변경에서 위세를 떨쳤으나,  천보년간(742~755) 동안 거란에게 패하자 병사를 보충하기 위해 농민을 끌어가고 조세를 더욱 무겁게 부과했다.

천보 10년에 쓴 <兵車行>시는 쓸데없는 전쟁에 내몰려가는 병사와 그 가족들의 하소연을 담은 작품이다.


 오랜 장마와 기근이 심해지자 두보는 한때 처자를 친척집 농가에 맡겼다. 다음해 처음으로 禁衛軍의 무기고 관리로 가장 낮은 관직을 얻었으나 일단 굶주림을 면하게 되었다고 기뻐하며 서둘러 처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장안을 출발해서 도중에 리산(驢山) 산기슭에 다다르니 그곳 온천에는 정치에 싫증난 현종이 楊貴妃와 함께 조정의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추위를 피해 와서 환락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두보는 "부잣집에서는 술과 고기냄새가 나지만, 길에는 얼어죽은 해골이 뒹굴고 있다"고 하며 빈부의 차가 너무나도 현격한 세상에 대한 분노를 토로했다. 봉선현에 겨우 당도해보니 처자는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고 어린 자식은 굶어 죽어 있었다.  이때 두보는 비분강개의 울분과 마음을 무겁게 덮쳐 누르는 서글픔을 강렬하게 호소한 장편의 시  <自京赴奉先縣詠懷五百字> 를 지었다.


두보는 가족을 데리고 난을 피해 피난길을 계속하다가 홍수를 만나 가족을 부주 교외의 강촌에 남겨두고, 자신은 닝샤성(寧夏省) 링우(靈武)에서 즉위한 숙종(肅宗) 휘하로 가던 도중 안록산의 반란군에게 잡혀 장안으로 도로 끌려 갔다. 이 연금된 기간에 <春望> <月夜> < 哀王孫> <哀江頭> 등 많은 유명한 시를 지었다.


혹여 우리의 현실이 이러한 지경이 아닌지 눈을 부릅뜨고 봐야 할 일이다.

나라의 권위가 오염돼 시궁창 냄세가 난다. 정의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질서는 사라지고 시스템도 무너졋다. 권력이 돈과 연을 맺고 춤을 춘다. 가진 자 배운 자가 속도를 내어 해먹기 바쁘다. 액수가 어마어마 하다. 부정과 편법이 지배하는 사회가 돼 버렸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는 더욱 깊어만 간다. 이러다가 나라가 망할까 봐 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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