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모통이

만인보의 조준희

서로도아 2016. 5. 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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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보  < 조준희>- 

                                     고은

 

볼 뱉어

아니 볼 들어가

거기 의지의 기운이 담겨 있다

잘 모르겠다

그 의지 말고

평범하다

그 평범 말고

면밀하다

두눈 작게 떠

방금웃은 눈 감은

10년 전이나 10년 후나 그대로 평범하다

먼데 바라보는 일 없이

말드물다

여기 후세의 위엄이 와 있다

저런 사람이 어떻게 반대신문인가 최후변론인가

그러나 피고인석 방청석에서 오른쪽

판사석에서 왼쪽

거기 변호인석에서 경쾌하게 일어나며

그의 조목조목은 산 넘고 물 건너

소식 한 다발 가져온다

 

고은(高銀)의 만인보<萬人譜>에 실린  조준희 변호사를 묘사한 시이다.

<萬人譜>란 1986년부터 2010년에 걸쳐 5,600여 명의 실체 인물을 대상으로 쓰여진 총30권으로 발간된 연작시이다.

 

내가 조변호사를 알게 된 시기는  이분이 언론중재위원회위원장으로 재임  때 였다. 고은 시인의 표현처럼 너무도 평범하고 범상하여 스스럼 없이 쉽게 마음을 주고 받으며 알고 지냈다.  독재와 불의에 맞서 싸운 인권변호사로서 <민변(民辯)>을 창립하고  한 때 대법원장 후보로도 거론 되었던 훌륭한 분인데 지난 해 11월 그만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너무도 애절하고 황망하다.  비록 연령상으로는 몇 년 아래였지만 이분의  올 곧은 정신 외에도 간소하고 소탈한 풍모에서 평소의 생활정신이나 범절을 마음 깊이 배움으로 삼으며 지내 온 터라 더욱 그렇다.

요즘 웬만한 CEO나 중역만 되어도 주위에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고개 한 번 숙이는 일 없이 꼿꼿한 자세로 세상을 살아가는 판인데, 이 분은 엘리베이터 안에서나 길에서나 어데서 만나도 먼저 수 인사를 하며 웃음을 짓고 말문을 여는 분이시다. 해묵은 옷 아껴 입으시고 이른 새벽  헬스장에 다녀온 후 승용차를 타지 않고  출근하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었고  부인과 산책도 자주 하던 모습이 엊그제 였는데 무엇이 급해서 서둘러 먼 길을 떠나셨는지 모르겠다.  

 

고 조준희 변호사는  1938년 경북 상주 출신으로 1959년 서울대 법대 재학중에 제11회 고등고시 사볍과에 합격해 서울지방법원 판사로 재직하다가  유신시대 1971년 변호사로 전업하였다. 

 

이후 유신독재에 저항하여 1980년대까지 3.1 민주구국선언사건, 리영희 백낙청교수 반공법위반사건, 동일방직 원풍모방시위사건, YH노조 신민당사 농성사건 등의 변론을 맡아,  이돈영, 황인철, 홍성우 변호사와 함께 인권변호사 4인방으로 불렸으며, 1980년대에는 부천서 성고문 사건, 김근태 고문 사건, 미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 말지 보도지침 사건, 남민전 사건 등의 변론과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특별조사단으로 활동함으로써  민주화 인사들의 버팀목이 되었다.

 

1986년에는 함승헌, 홍승우, 이돈영, 조영래 변호사 등과 함께 민변의 모테인 정의실천법조인회(정법회)를 만들어 1988년 민변을 창립하면서 초대 대표가 되어 불의에 과감히 맞섰다.

 

1994년 인권변호사로서는 처음으로 국민훈장모란장을 수상했으며 2001~2002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위원장, 2003~2004년 사법개혁위원회 위원장 , 2005~2008년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 한 분이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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