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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도아 2010. 10. 20.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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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豊魚                                                                                       요석(樂石)

 

 해변에 살던 어렸을 때의 추억이다. 조기떼가 몰려왔다는 소문에 온 동네가 발칵 뒤집

혔다. 물때가 밤 10시란다. 물때란 바닷물이 6시간 간격으로 밀물과 썰물을 반복하는데,

썰물 때 어장에 나가 고기를 잡는 시각을 말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동네 사람들이

저녁이 되자 바다로 향한다. 어린 나도 호기심이 발동하여  꼴망태기 하나 메고 아버지

뒤를 따랐다. 어장까지는 둑에서 갯벌로 2km 남짓 들어가야 한다.

 

 당시의 어장은 죽방렴(竹防簾) 형태의 원시어장이다. 참나무 말목을 물길이 있는 갯벌

위에 V자 형태로 듬성듬성 박아놓고 거기에 대나무 발을 쳐, V자 끝에는 들어온 고기가

썰물에 빠져나가지 못하고 모이도록 어방(魚房)을 만들어 놓은 형태이다.

 서해바다는 대사리 때가 되면 간만의 차가 심해서, 최대의 썰물 때면 바닷물 끝이 육안

으로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2, 3십리 밖에서 왔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미

100여명의 사람들이 제방에서 물때를 기다리며 북적대었다. 다행히 밝은 보름달이 떠

간데라불이 필요 없었다. 달밤에 바다에서 맨손으로 고기를 잡다니, 마음이 설레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바닷물이 밀려난 갯벌 위로 사람들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바다에도

육지처럼 물길이 있고 다니는 길이 있어서 물길을 피해 어장까지 가는  길은 지반이 단

하고 발이 빠지지 않았다. 이 길을 어부들이 다니는 바닷길이라고 한다.

 썰물을 따라 어장 가까이에 이르니 사람들의 아우성이 요란하다. 정강이 아래의 물속

데 파도가 일어 아래옷은 이미 모두 젖었다. 이 물속에서 움직이는 것, 발에 차이는

것이 모두 조기다. 그야말로 고기 반 물 반이니 여기는 바다가 아니고 고기를 담아놓은

수족같았다. 족대로 건지기도 하고 맨손으로 잡기도 하였는데, 발버둥치는 고기와

싸우느즐거운 비명들이다. 떼로 몰린 조기를 물속에서 주어 담으면 되는데 어른  팔

뚝만한 고기가 순수하게 잡혀줄 리 없다. 얼굴이며 옷이 모두 바닷물에 젖어 수영하는

듯 했다.

 어장 주인도 이 주체할 수 없는 조기를 주어진 시간 안에 잡아내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때문에 주민들에게 개방한 것이다. 그래서 주인이 없는 조기를 담아가는 사람이 임

자였다. 사람의 욕심이 그런가. 능력은 생각하지 않고 가마니, 마대, 지게 등 할 것 없

가득가득 담아 짊어지고 일어설 수가 없으니 이젠 덜어내는데 시간과  힘을 낭비하

였다.

 누군가 곧 밀물이 시작되니 빨리 빨리 나가야 한다고 소리치자, 잡은 걸 버린 게 아쉽

지만 최대의 능력대로 짊어지고 진력을 다하여 밀물이 덮치기 전에  무사히 되돌아 나

왔다. 제방에 이르러서는 동네에서 대기시킨 수레, 구루마가 동원되어 집에까지 그 많

은 조기를 운반하였다. 조기풍어를 맞은 것이다. 아버지가 가져오신 조기가 한 가마니,

기진맥진한 나의 망태기에도 50여 마리의 조기가 들어 있었다. 힘든 하룻밤의  고역이

었으나 돌아보니 평생에 다시없는 경험이었다. 우리 가족들은 두고두고 신물이 나도록

참조기 반찬에 밥을 먹었다.

 

 이처럼 흔했던 바다 생선이 지금은 귀한 물건이 됐다. 추석명절이 다가오면서 굴비

이 껑충 뛰었다. 오랜 옛날부터 삼 실과와 더불어 제사상에 빠지지 않는 것이 조기이다.

그런데 이 굴비 값이 금값이다. 굴비란 조기를 소금에 절여서 말린 것으로 전남 영광굴

비가 유명하다. 조기는 겨울에 동지나 해역에서 월동하다가 해동이 되면 산란을 위해서

추자도와 흑산도 해역을 거쳐 연평도까지 북상하는데, 도중 영광,  법성포부근의  칠산

앞바다에서 4월 10일경부터 산란을 하게 되어 이때를 놓치지 않고 잡아낸 것이 영광굴

비이다.

 

 어부는 어떻게 조기떼를 감지할까? 칠산 앞 바다에서는 철쭉꽃이 만발하면 알을 배고

싶은 참조기 떼의 혼성합창을 듣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 어부들은 기다란 대롱을 바닷

물에 꽂고 바다 속의 소리를 감지하고 밤샘을 한단다. 어느 쪽에서 얼마큼의 사랑작업

을 하고 있는지 그 합창의 음질과 음량으로 감별하는데 그 소리가 마치 솔밭을 스치는

바람소리 같다고 한다.

 

 나는 장손으로 태어나 일 년이면 여러 번 제사를 올리는데 먼저 준비하는 음식이 굴비

이다. 그런데 이 굴비가 참조기냐 아니냐 라는 것과 우리나라 근해산이냐 외국에서 수

입된 것이냐에 이르기까지 말이 많아, 장에 가도 유심히 살펴보는 습성이 생겼다. 중국

굴비를 영관굴비로 산지를 속이는 요즘세상이고 보니 제사상을 준비하는  나로서는 마

음이 착잡함을 떨칠 수가 없다.

                                

                                                           2010.9.19                       surodoa

 

 

 

 

 

 

                                                          

                                                           죽방렴 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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