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태종무열왕릉과 김유신장군 묘

서로도아 2024. 11. 19.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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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제29대 무열왕(재위 654~661) 릉이다. (사적 제20호)

경주 시가지 서쪽 선도산 동쪽에 있는 5기의  큰 무덤 가운데 맨 아래쪽에 있다. 발굴조사를 하기 위해 봉분을 일부 가려 놓았으나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으로 추정하고 있다. 통일 신라시대의 다른 무덤에 비해 봉분장식이 소박한 편으로 무덤주위에 자연석으로 둘레돌을 둘렸다.

 

 

숙소에서 바라보이는 무덤군들

 

무열왕릉 입구에 세운 이야기 판

 

 

 

 

왕릉 앞에 세워진 석비 (국보 제25호)

등에는 커다란 벌집모양의 육각형을 새긴 후, 빗몸 위 머릿돌에는 용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서악동 고분군(사적 142호)

 

 

 

 

 

 

 

 

김유신(金庾信)장군묘역  ( 사적 제21호)

신라 장군 김유신의 무덤이다.  지름이 30M에 이르는 커다란 규모이며, 봉분 아래는 둘레돌을 배치하고 그 주위에 돌난간을 둘렀는데, 둘레 돌은 조각이 없는 것과 12 지신상을 조각한 것을 교대로 배치하였다. 12 지상은 평복을 입고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몸은 사람의 형체이고 머리는 동물보양이다.

출입문  

 

가는 길

 

 

 

 

김유신과 김춘추 이야기

김유신(595~673)과 김춘추(재위 654~661)는 삼국통일에 중심역할을 한 주역이다. 김유신은 군사적인 능력이 우수했지만 신분적인 제한이 있었다.  김유신은 이 문제를 적극적인 방법으로 해결했다. 성골 남성이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아 성골여성이 왕위를 잇고 있는 상황에서 진골 신분인 김춘추와 힘을 합치면  훗날을 도모할 수 있다고 판단한 김유신은 자신의 여동생과 김춘추의 혼인을 성사시켜  혈연관계를 맺으며 정치적 발판을 마련하였다. 

 

신라의 제29대 왕 김춘추 (604~661), 재위 (654~661)는  진지왕의 손자이며 이찬 용춘의 아들이다. 왕명은 "무열왕" 또는"태종무열왕"이라고 한다. 신라 역사상 처음으로 진골 귀족의 신분으로 임금의 자리에 올랐으며 , 이후 당나라와 동맹을 맺어 백제를 멸망시킨 뒤 신라기 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