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여행

베트남의 소재지

서로도아 2020. 3. 4.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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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현주소를 알기 위해서는 폐허가 된 황실의 역사를 들추지 않을 수 없다. 

 

현 사회 문화적 현실

모계사회제도 하에서 부인들이 남자들보다 훨씬 활동적이다. 혁명과 전쟁을 수행하면서 여자가 경제성장의 주역 역할을  하여 왔다. 인구 1억보다 많다는 오토바이,  도로가 오토바이 자동차 사람이 뒤섞여 혼란스럽다. 도로에서는 자동차가 오토바이를 피해가야 하며 사람이 오토바이, 자동차를 피해가야 한다.  획일적인 전면 5m~15m의 구획된 집과 건물들, 사회주의 국가임이 한눈에 들어온다. 토지를 사유화할 수 없고 누구나 균등하게 배분하기 위한 정책일 것이다.

 

 

 

 

긴 옷 아오자이, 한복처럼 명절이나, 예식 때만 입는다. 거리의 아오자이 옷차림은 대부분 관광객들이다.

상징물인 원추형 논 모자, 더위를 피하기 위한 필수품이다. 

대가족(3대)이  한 집에서 사는 가정, 대부분이 가난하다. (1인당 국민소득 2017년기준 1,300 달러) 가정환경 때문에 정규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 그렇지만 특권층은 엄청난 부를 누리고 있어 빈부의 격차가 심하다. 그래서 부정 부패가 난무하고, 관광지에는 소매치기도 득실거린다. 우리나라보다 30, 40년은 뒤쳐졌다는 느낌이 든다. 가족 -돈- 자기자신- 회사 순으로 가족을 중시하는 가족중심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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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자연환경과 풍부한 지하자원. 잠재력이 풍부함에도 왜 경제적으로 낙후됐을까?

 

베트남은 왕조국가로 천여 년 동안 중국의 통치를 받아 속국으로 있다가 AD938년 정치적 독립을 획득하였으나 후에도 중국과 조공관계를 유지하면서 그 제도와 문물을 받아들였다

 

BC 2,919년 홍방왕조 건국.  BC 111년~ AD 938년 중국의 속국. 중국으로부터 독립 후, 왕조의 통치가 이어져 오다가  15세기 레 왕조가 절정에 달한다. 17세기 끝나고 남북 왕조로 갈라졌을 때  1802년 프랑스의 도움을 받아 응우엔 왕조가 남북통일을 한다.그러나 중화사상에 빠진 2대 민망 왕 때 프랑스 이권을 빼앗고 탄압하자 프랑스는 군대를 보내 다낭을 점령하고 사이공 메콩 델타를 차례로 점령하여 프랑스는 90년간의 식민지 통치에 들어가 왕을 꼮두각시로 만든다.

 

친 불 세력 들은 권력과 부를 얻게 되어 이들이 나중에 베트남 공화국의 무도 세력이 된다. 1946년 베트남 독립 호치 민군과 민족해방군과 프랑스군의 전쟁이 시작되어 1954년 프랑스군이 대패하여 독립이 되었지만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독립된 베트남은 북은 베트남 민주공화국(호찌민), 남은 베트남 공화국(친불파)이 탄생한다. 하지만 공산화 확대를 우려한 미국이 베트남 전쟁을 일으켜 8년간 이어진다. 이 전쟁 때 미군의 무자비한 폭탄 투하로 공장과 도시는 초토화되고 화학약품인 고엽제를 투하하여 많은 인명피해를 입게 되었다.

 

친 중국 캄보디아 정권(크메르 루주 정권)인 폴 포트의(킬링필드) 베트남계 숙청으로 베트남이 캄보디아(공산국가)를 침공하여 점령하자, 1979년 중국은 베트남 침공 전쟁을 일으켜 베트남의 1개 도시를 파괴하고 또 많은 인명피해를 입혔다. 불과 60여 년 만에 4번의 큰 전쟁을 치른 베트남은  인적 물적 피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국력은 쇠약해졌다.(당시 1인당 국민소득 800불)

 

역사에서 보듯이  왕조시대에 정권 쟁탈을 위한 내부적 분쟁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수많은 외국과의  전쟁을 치렀다.

베트남 공산당은 새로운 국가 건설을 외치지만 한계가 있으며 180년이 지난 현재, 화해와 개방 물결로 외부자본이 들어와 도시와 도로, 공장, 항만 등이 건설되고 있고 많은 변화를 가져왔지만 사회주의 체제의 고질적인 병폐와 한계로 외국 매판자본과 외국문화에 대한 경계, 부정부패 만연, 빈부격차, 남북지역 간 감정, 책임감 부족, 느린 행정, 게으름 등이 아직도 존재하여 베트남 발전을 더욱 더디게 하고 있지 않나 싶다.

 

그러나 사회주의 국가임에도 1986년 적극적인 경제개혁개방정책으로 나아가 꾸준히 경제성장을 이루어 2019년 국내 총생산(GDP)이 최근 7%대에 이르고 있다. 1인당 국민총소득(GDI)은 약 3000달러이다.  북부 하노이, 남부 호찌민은 거의 제조업 생산기지로 산업 단지화하여 포화 상태이며 중부지역도 개발이 본격화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9000여 기업이 진출해 있으며 투자액은 1988년 이래 677억 달러 (한화 약 779조 원)로 세계 135개 투자국가 중 단연 1위이다.  강점은 풍부한 노동력(젊은이가 많고 우수하다), 값싼 인건비(월평균임금 228달러. 약 27만 원), 태국 391달러, 중국 613달러 보다 싸다.  질 높은 생산성, 지리적 환경 등으로 중국을 대신해 생산기지로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 앞으로 투자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의 역사와 대동소이하다. 좁은 땅덩이 속에 여러 부족 국가 탄생, 부족국가 간의 영토 싸움, 왕권 제도와 붕당 정치 그 속의 끓임없는 살육과 권력 투쟁 , 외세에 의존하려는 정치세력, 약해진 국력, 외국의 침략 , 독립과 남북 분단, 남북 전쟁, 파란만장한 역사의 흐름이 다름없다. 당파적 내분과 전쟁으로 국력이 약화되면 외국의 침략을 받아 속국이 된다는 철리는 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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