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리올(Montreal)
캐나다에선 몬 추리 얼로 프랑스어로는 몽레알이라고 한다. 몬트리올은 세인트 로렌스 강어귀의
몬트리올 섬에 있는 인구 180만의 캐나다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이다. 섬 중앙에는 낮으막한
몽레알 산(270m)이 있다. 토론토에서부터 이곳까지 고속도로를 이용 오는 동안 목초의 대 평원
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낮은 산이다. 캐나다의 고속도로 이용료는 무료이므로 요금소가 없다.
영어와 불어를 함께 쓰는 온타리오에서 퀘벡주로 들어오니 불어권에 속하여 고속도로 간판이나
도시 전체가 온통 불어이다. 몬트리올의 인구 68%가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13%만 영어를 사용
한단다. 퀘벡주가 불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게 된 원인은 400여 년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있다.
이 지역은 1,535년 프랑스인 자끄 까르띠에가 발견하였으며, 1,611년에는 사무엘 드 샹플랭이
모피의 교역소를 세웠으나 실질적인 도시화는 1,642년에 메조뇌브가 정착마을을 세운 데서 시작된다.
그 후 모피교역의 중심지 및 내륙 탐험의 기지가 되어 번영하였으나, 영국과의 식민지 쟁탈전에서
프랑스가 패한 것을(1,759) 계기로 몬트리올을 포함한 퀘벡 주는 영국의 손에 넘어가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몬트리올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 전통은 이후에도 강력하게 보존되고 지켜져서 캐나다가
오늘날 원주민 문화와 더불어 복합 문화 전통을 강하게 유지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현재는 유럽과 캐나다 각지를 연결하는 교통의 중계지로 목재 및 밀가루, 버터, 치즈, 모피 등을
대량으로 수출하는 캐나다 최대의 무역항이다.
주민의 80%는 프랑스계 가톨릭이며, 많은 성당이 있다. 그중에서도 노트르담 성당과 세인트 제임스
성당이 유명하다. 또 주민의 18%는 영국계이다. 17세기 중엽 프랑스인이 정착한 뒤부터100여 년 간
프랑스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18세기 후반에 영국령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영국과 프랑스 양계열
의 문화가 접촉하고 있으나 영국문화에 밀려 프랑스적 색채는 퇴색해가고 있다고 한다.
시의 중심부는 몽레알산의 기슭에 형성되어 있으며, 해발 약 230m의 산정에는 거대한 십자가가 있다.
1,844~1,849년에는 캐나다의 수도였으며, 1,967년에는 세인트로렌스 강에 만들어진 2개의 인공섬에
서 국제박람회가 개최되었고, 1,976년에는 올림픽이 개최되어 우리나라의 양정모 선수가 레슬링에서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기도 하였다.
1,821년 창립한 영어계의 세계적인 맥길(McGill)대학교와 1,876년 창립한 프랑스어 계열의 몬트리올
대학이 있으며, 그 밖에 세인트 마리대학교, 서(西) 조지월리엄스대학 등이 있다.
도시 중심지
성 요셉 성당
1904년 앙드레 신부에 의해 건립된 성 요셉 성당은 세계 최대의 규모로 길이 105m, 폭 65m,
높이 97m이다.
몬트리올(몽로얄) 산 중턱에 안드레 수사의 기도실이 있었는데, 안드레 수사가 기도를 하면 병이
나아서 밀려드는 환자들을 위해 더 크게 성당을 짓기 시작해서 50년에 걸쳐 성당을 지었다고 한다.
성당 내부는 에스컬레이터 설치 등 현대적인 모습이다. 성당 옆에는 아직도 안드레 수사가
사용했던 기도실을 볼 수 있었는데 안드레 수사는 아주 검소하여 모든 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다 나누어 주고 본인은 아주 검소하게 살았다고 한다. 성인 추대를 올려서 30년 만에 안드레 수사가
성인으로 추대되었다고 한다.
성 요셉 성당
밑에서부터 300계단을 올라야 한다
연간 2백 만명이 찾는 순례지로 유명하다
성당 앞
성당까지는 3단계 계단을 올라야 한다
모자이크 벽화
신자의 촛불
성당 내부
안드레 수사의 심장을 깨끗이 보관되고 있는 곳을 볼 수 있다.
환자가 병이 나아 놓고 간 목발
파이프 오르간
이 성당을 건립한 안드레 신부는 특별한 치유능력이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환자들이 목발을 짚고
왔다가 목발을 놓고 갔다는데... 여하튼 그 특별한 능력으로 이 이 성당이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안드레 수사의 심장을 안치한 장소
종탑, 시간에 맞추어 합창이 울린다고 한다
1937년 92세로 세상을 떠난 안드레 수사의 모습, 시신은 이 성당 안에 안치되고 있다.
성당 주변
웅장한 석조건물로 내부의 육중함은 압권이다.
1963년에 개관한 플러스 데 자르(Place des Arts) 예술과 공연 문화의 중심지
몬트리올 지역의 차를 보면 앞에는 차 번호판이 없고 뒤에만 있다. 원래는 캐나다에서 가장 발전된 도시에
속했지만, 1,976년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경기장을 지었는데 이때가 이념이 대립되던 시절이라서 반쪽
올림픽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 그래서 올림픽 때 경기장 건립 수익을 다 벌어들이지 못해 몬트리올 시가
빚더미에 앉게 되었고 그에 반발한 시민들이 자동차 번호판 하나 달기 운동을 해서 점차 다 떼어 버려서
하나만 남았다고 한다.
그리고 퀘벡주에 있는 자동차 번호판 위엔 'J Me Souviens' 라고 되어있는데 '우리는 기억한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미국과 캐나다 번호판 위에는 각 주의 특징적인 문구를 넣었는데, 벤쿠버에서 등록한 차는
'Beautiful British Columbia', 온타리오 주는 'Yours to Discover'(탐험 해야할 곳),
미국의 뉴햄프셔 주는 'Live Free or Die' (자유아니면 죽음),
캐나다와 미국의 자동차번호판은 주마다 색깔이나 문양이 달라서 번호판만 보면 어데서 오는 차인지
알 수 있다.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 국경을 넘을 때 사람은 여권-비자가 있어야하나 캐나다와 미국의
자동차번호판을 단 차는 그냥 국경을 통과 한다고 한다.
노트르담 대성당( Basilique Notre-Dame de Montreal)
뉴욕 건축가 제임스 오도넬(James O'Donel)에 의해 설계되어 1829년에 완공된 노트르담 성당은
네오고딕 양식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곳은 몬트리올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인 동시에 북미 대륙을
대표하는 최대 규모의 성당으로 꼽힌다.
총 수용 인원은 약 4000여 명이다. 성당 내부는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어 있다. 천장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지난 350년간의 몬트리올 역사가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로 쏟아지는 빛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금박을 입힌 조각과 종교화, 성서의
인물을 정교하게 조각해 놓은 의자, 5772개의 파이프로 만든 거대한 파이프오르간도 볼 수 있다.
노트르담 성당
노틀담이란 가톨릭에서 '성모 마리아'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존칭이다.
프랑스어로 '우리들의 귀부인'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화려한 성당의 내부
성당의 뒤편으로 가면 또 하나의 채플이 나온다(Chapel of Notre-Dame du Sacre-Coeur)
이 채플은 동(Bronz)으로 조각된 것이라고 한다.
화려함과 웅장함 거기에 정밀함까지 갖춘 노트르담 대성당
내부 촬영이 불가능하여 Crom2481님과 Jieun Lim님의 사진을 빌렸다.
올드타운 시청 앞 광장의 기념비 위에 세워진 넬슨 제독의 동상
1805년 트래팔가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격파한 영국의 해군 제독 넬슨의 동상
화랑 미술가인 쌩쁠 거리를 지나 항구쪽 산책
돔형 건물 (1847년건축)은 봉스꾸르 마켓, 지금은 미술작품을 판매하고 있다
금년 6월 토론토대를 졸업한 구본성군 모자와 동행하며
세인트로렌스 강의 항구 킹 에드워드 부두가에서 아들과
쟈끄까르띠에 광장
시청 맞은편 경사진 언덕에 위치한 광장. 광장이라기 보다 강쪽에서부터 시청을 바라보고 올라
오면서 양 옆으로는 옥외 파티오 들이 놓여져있는 음식점들로 가득한 거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다운타운의 중심지로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꽃을 파는 사람, 마차로 관광하는 사람들의 발길
이 끊이지 않아 활기가 넘치는 곳이다.
몬트리올 시청(Hotel de Ville)
1872년에서1878년에 걸쳐 건축된 시청은 1960년~1970년대 퀘벡주 독립운동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1967년 프랑스 드골 대통령이 이곳 발코니에서 퀘벡분리주의자들의 슬로건인
"자유 퀘벡 만세"를 외치기도 했다.
몬트리올 시청(Hotel de Ville)
구 법원 청사
신 법원 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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