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암서원과 하서 김인후
昨日伐了木百尺長松非也歟 (작일 벌료목백척장송비야여) 若使至今焉在可作棟梁材 (약사지금언재가작 동량재) 此後明堂傾矣于何以支之 (차후 명당경의 우하이 지지) 엊그제 벤 나무 백 척 장송 아니런가 적은 덧 두었던들 동량재 돌리려니 이 뒤에 명당 기울면 어느 나무 받치리 -하서 김인후- ★ 1547년 丁未士禍(벽서의 옥)에 관련되어 많은 선비들이 억울하게 죽자 애통함을 금치 못하여 읊은 시이다 |
460여 년이 지난 현재의 정치상황에서도 되새겨 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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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에서 나와 1번 국도를 타고 내려와서 장성읍을 지나면 황룡강 가의 황룡면 필암리에 필암서원(筆巖書院)이 있다. 호남지방의 유종(儒宗)으로 추앙받는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 선생을 배향한 필암서원은 현종 때 필암이라는 액 호를 하사 받은 사액서원(賜額書院)으로서 후일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다치지 않은 채 원형이 온전히 보존된 서원이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 뒤를 감싼 가운데 평지에 자리 잡은 이 서원은 선현에 대한 제향의 공간과 교육 및 학문 수련의 공간, 그 밖에 장서 공간이나 지원시설공간 등 조선시대 서원의 기본구조를 모두 갖추고 있는 전형적인 서원이다.
신성한 곳임을 알리는 홍살문을 들어서면 서원의 정문이면서 동시에 원생들의 휴식처가 되었던 2층 문루 건물이 나오는데 정문에 나 붙은 곽연루(廓然樓) 현판은 우암 송시열 선생의 글씨란다. 마당을 지나 곧바로 닿게 되는 곳이 청절당(淸節堂), 이곳은 원생들이 모여서 학문을 토론하던 강당으로 가장 규모가 큰 중심 건물인데 가운데 세 칸은 대청 마루이고 양 옆 한 칸씩은 온돌방으로 되어있어서 전천후 교육시설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청절당을 지나 더 들어가면 정면에 사당인 우동사(祐東祠)를 향하는 왼쪽과 오른쪽 양편에 원생들이 기거하던 동재와 서재가 있어서 강당과 더불어 서원 교육기능의 핵심을 이룬다. 통상 재실은 강당 앞으로 좌우에 있는데 이곳은 강당 뒤편에 있는 것이 특이하다. 동재와 서재에는 진덕재(眞德齋), 숭의재(崇義齋)라는 현판이 각각 걸려 있는데 이 현판들은 청절당의 현판과 함께 모두 동춘당 송준길(同春堂 宋俊吉)이 쓴 것이고, 청절당 정면에 걸려 있는 또 하나의 현판인 필암서원(筆巖書院)은 영조 때의 강문 8학사 중 한 분이었던 병계 윤봉구(屛溪 尹鳳九)가 쓴 것이며, 숭의재 옆의 조그마한 건물 경장각(敬藏閣)의 현판은 정조의 친필이라고 하니 현판 글씨들 만으로도 이 서원의 높은 품격을 짐작케 한다.
이 서원에는 인종이 하사한 묵죽 판각(墨竹板刻)이 경장각에 보관되어 있고, 하서 집 등 1,300여 권의 서책과 보물 제587호로 지정된 노비보(奴婢譜) 등이 소장되어 있어서 필암서원의 역사뿐 아니라 유교의 지방교육제도와 당시 사회 경제사의 연구에도 중요한 사료가 된다고 한다. 향교와 함께 지방의 중요한 교육시설이었던 서원은 향교가 공교육시설 임에 반하여 사교육시설이었고, 같은 교육시설이면서도 대체로 서당이 초등교육시설이었다면 서원은 고등교육시설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필암서원에 배향된 하서 김인후(1510~1560) 선생은 장성 출신으로 당시 유일한 중앙교육 시설이었던 성균관에서 퇴계 이황과 함께 학문을 닦았으며, 잠시 벼슬을 하기도 하였으나 ‘을사사화’(乙巳士禍)가 일어나자, 고향으로 돌아와서 성리학을 연구하고 후학을 가르치면서 평생을 보냈다고 하는데 그의 집 앞에는 배움을 청하려는 선비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그중에는 송강 정철(松江 鄭澈)도 끼어 있었다고 한다.
신라, 고려, 조선조를 통하여 문묘에 배향된 18명의 현인(賢人) 가운데 한 분인 김인후 선생은 유일하게 전라도 출신이어서 호남 선비들의 긍지를 갖게 하는 인물이다.
참고로 문묘(文廟)에 배향(配享)된 우리나라 18현을 열거하면 신라의 설총(薛聰)과 최치원(崔致遠), 고려의 회헌 안향(晦軒 安珦. 후에‘裕’로개명),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 조선조의 한훤당 김굉필(寒暄堂 金宏弼), 일두 정여창(一두 鄭汝昌), 정암 조광조(靜庵 趙光祖),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 퇴계 이황(退溪 李滉), 율곡 이이(栗谷 李珥),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 우계 성혼(牛溪 成渾),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 신독재 김집(愼獨齋 金集), 중봉 조헌(重峯 趙憲),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동춘당 송준길(同春堂 宋俊吉), 현석 박세채(玄石 朴世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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