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의 프라하로부터
날이 어두워질 무렵 우리는 체코의 프라하 공항에 내렸다. 잔뜩 찌푸린 여름날의 우울한 날씨 속에 대기한 버스를 이용하여 폴란드로 향하였다.
중간 숙소에서 하룻밤을 자고 학창 시절 '쇼팽'이라는 음악가를 통해서, 또 '퀴리부인', '코페르니쿠스'등을 통해 익혔던 폴란드에 도착하였다.
이 나라는 14C경에 황금기를 이루었으나 18C에는 패망하는 불운을 겪고 다시 일어나 경제성장을 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 현장인 오슈비엥침으로 이동하여 유태인 수용소로 잘 알려진 '아우슈비츠'를 관광하였다. 이곳은 1940년 히틀러가 세운 제1수용소로 유태인 대 말살정책과 폴란드 정치범, 주로 나치에 저항운동을 하던 각국의 정치인, 지도자급을 수용한 수용소라 한다.
유대인 등 15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이 수용소는 전체 28동으로 박물관과 전시관으로 꾸며져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당시의 시설물들을 전혀 손대지 않고 끔찍한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여 후세에게 전쟁의 참상과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산 교육장으로 공개하고 있다.
체코의 프라하 공항
폴란드의 아우슈비츠에서 점심
건물에 들어서자 바로 보이는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자, 그역 사를 되풀이한다.'는 문구는 우리의 슬픈 역사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수용소 안의 각종 생활기물과 죽은 자 들의 소지품, 전시실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돼 있어서 그 참상을 옮길 수는 없으나 당시 나치의 처참한 학살과 만행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나치들은 수용된 유태인들의 소요를 막기 위해 죽으러 가는 사람들의 물품에 모두 이름을 쓰게 하여 마치 다시 돌려줄 것처럼 위계를 써 기만한 것이나, 유태인들의 머리털을 잘라 군수물자인 천을 만들어 사용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하여 수북이 쌓아 놓은 머리털이며 짜다만 천만 보아도 가슴이 송골 해 지는데, 당시 나치 점령지의 사람들에겐 얼마나 전율과 공포의 대상이었을까를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다.
음악과 미술을 사랑한 히틀러, 그는 어린 시절부터 유대인에게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한다. 사후 그는 연구대상이었기에 미 OSS의 극비 보고서인 '히틀러의 정신분석'이란 책을 통해서 낱낱이 분석된다.
수용소 입구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 막사
무시무시하게 전기 철망으로 이중 설치된 수용소 시설
아우슈비츠 수용소 시설
유태인을 집어넣고 불에 태워 죽인 가스실 시설
수용소 입구엔 독일어로 '일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 '라고 새겨진 철책이 보인다.
노동력이 있는 사람은 강제 노역(군수물자 생산공장)에 나다니고 늙거나 병든 자, 어린아이들은 모두 학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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